하얀 꽃들이 피었다.
하얀 미소가
마음을 툭 친다.
바람에 저항하지 않는 저 꽃잎들처럼
불어오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의연할 수 있을까.
잠시
호흡을 고른다.
따라비 오름
3개의 굼부리가 높고 낮은 기복을 형성하며 독특한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
등성이를 따라 산책을 즐겨본다.
누군가 쌓아놓은 거욱대들이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다.
무슨 연유로
따라비의 굼부리 안에까지
거욱대가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악한 것을 막고 평화를 염원하는 그 마음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땅하래비 그래서 따하래비 따애비 따라비
높은 산 그래서 다라미 따라비
...
어원을 풀어내며 먹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서는 다 소용없다.
거친 바람과
쓸려간 구름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기에도 충분하다.
'올레는 걷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준 것에 감사하며
인적 드믄 따라비의 참 맛과 함께 한다.
오름의 정상에
점을 찍고
우주를 향해 마음을 연다.
정상 위에 또 정상이 있고
모든 것은 '이름붙임'일 뿐이지만
그러면 또 어떠리.
바람은 거칠어 좋고
햇살은 따가워 좋고
또한 오늘처럼 인적 드믄 따라비라 좋다.
말을 하기가
무언가에 눈길을 주기가
점점 귀찮아지지만
싱그러운 솔잎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따라비의 알오름에 자리한 헌마공신 김만일 후손의 묘
남원읍 의귀리 김만일은 전마 5백필을,
그의 아들 김대길도 2백필을 헌마하여
대대로 감목관 벼슬을 세습받았다고 한다.
소박한 새김
마음에 든다.
따라비 건너 큰 사슴이 오름
이곳 오름 일대의 광활한 목장은
김만일이 말을 기르던 녹산장, 상장, 침장이었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헌마한 것을 계기로
조정에서는 이 일대를 산장이라 하고 감목관 벼슬을 내렸다.
산장에서는 3년마다 2백필씩 헌상했으며
문중에서 해마다 감목관을 추천 임명케 했다.
녹산장은 지금의 제동목장
대한항공 주인의 땅이다.
그곳에서 물을 뽑아 기내에서 생수로 제공하고
또 뭐 더 뽑아 팔겠다고도 한다는데
...
유구무언이다.
풍경 앞에서 잠시 머문다.
설오름이 보이는가
봄의 진달래가 보이는가
시선이란 그저 생각의 투영일 뿐이다.
풍경 앞에서 또 잠시 머문다.
가을의 흔적이 보이는가
그너머 큰 산의 그림자가 보이는가
이도 저도 아닌데
저마다 우기기는...
모든 풍경은
그래서 그림자라 한다.
그래서 꿈이라 한다.
그래서 물거품, 환영이라 한다.
이곳은 따라비
이름 없는 알동산 옆으로
터벅터벅 걸어내려 온다.
'이름붙임' 하며 살다가
'이름없음'으로 돌아가려면
가끔 세상을 향한 촉수를 거둬들여야겠지.
컴퓨터를 끄고...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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