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선흘리의 우진제비 오름
표고 411m 비고 100여m
뒷모습은 아버지처럼 둥글고 담담한데
앞모습은 어머니처럼 양 날개로 굼부리를 감싸안은 듯한 모습이
성읍의 성불오름과도 그 형태가 아주 비슷해 보인다.
한 발 내디디니 이 산의 온화한 느낌이 온몸에 퍼진다.
산책로에 일부러 놓은 돌계단 길만 아니었더라면
그 편안함에 깊이 묻힐 뻔했다.
우진샘
예로부터 사시사철 맑은 물이 끊이지 않아
가뭄이 들었을 때는 선인동, 덕천에서까지 식수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우진샘에서 마주 보이는 벵벵뒤는 천군이 모여 있는 상이고
우진샘은 천월장군이 칼을 차고 사열하는 터로서
이곳 우진제비 오름은 천월장군이 태어날 명당으로 알려져 왔다.
맑은 윗물은 사람의 몫
물양귀비 가득한 아랫물로 내려오면서
말도 소도 노루도 목을 축인다.
스민 물을 받아먹고 고운 꽃들이 얼굴을 내민 우진제비
맑은 물에
마음을 씻었으니
바람 타고 날아갈 준비가 되었는가
송신기가 많아도
수신 불능인 세상을 바라보며
내 마음의 수신 상태를 점검한다.
새미오름
수풀에 가려 좁지만
우진제비의 정상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웃바매기 알바매기
연무가 짙다고
허공이 좁아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우진샘을 품고 있어서 그런지
굼부리의 깊은 골짜기에서
맑은 향내음이 나는 듯하다.
우진제비의 멋은 굼부리의 둘레 길
걸음이 놓이는 자리마다
전혀 다른 식생이 자리한다.
나무의 이름을 불러본다.
윤노리야, 느티야, 쥐똥아, 비목아
드믄드믄 갈잎 곱고
잠깐 멈추어 설 때마다 피어나는 향기
심장을 문신으로 새긴 나무 근처에서도
발길을 붙드는 향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문득 하늘이 트인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거문오름의 봉긋한 모습이 새롭다.
긴 둘레길을 걸어나올 때쯤
내 몸에는 가을이 문신처럼 새겨진다.
때는 보름이라
오늘 밤에는 이곳에 천월이 뜰 모양이다.
향기가 이리 진한 것을 보아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