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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영실 존자암

by 산드륵 2010.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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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돌아본다.

12월이다.

 

흰 눈 위로

환하게 쏟아져 내린 햇살도 얼어

눈물같은 자국을 남겼다.

 

폭설이 그치고

길이 뚫리자

더 깊은 산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다.

 

한라산 영실의 존자암으로 걷는다.

 

제일 반야교를 건너고 제이 반야교를 지난다.

 

산짐승이 먼저 길을 낸 영실의 깊은 숲

 

레일을 건너 숲으로 사라졌다.

 

사슴이냐, 노루냐. 아니면 산토끼냐.

 

누군들 어떠하랴만 이쯤에서는 미끌어져 엉덩방아도 찧었겠다.

  

푹푹 무릎이 잠기는 눈밭

 

길은 여전히 미끄러운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뒤따라오던 사람이 일없이 멈춰서 있다.

생각에 잠긴 것은 아니고 소리에 끌린 것이 분명하다.

 

졸졸거리는 소리가 먼저 있고나서

아니나 다를까

겨울에도 얼지 않는 영실의 맑은 물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존자암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한라산 영실 존자암

 

 

종각 옆으로 물소리가 청아하다.

 

존자암지에서 발견된 기와편들

 

한라산 해발 1280미터 지점 불래오름 기슭에 자리한 존자암은

동국여지승람과 탐라지에도 이미 그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93년부터 발굴을 시작하여

건물지와 배수시설 및 기와편 백자편 분청사기편 등을 찾아냈고

독특한 형식의 부도도 발견해냈다.

 

발굴 조사 결과에 의해 여러 건물지가 들어서 있다.

 

발굴 당시 폐허 속에서 발견된 부도

 

일반적으로 부도에는 열반한 스님이 누구인지를 새겨넣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부도에는 아무런 새김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석가 세존의 사리탑이 아닌가 하고 추정하고 있다.

 

석가 세존의 제자였던 발타라 존자가

세존의 사리를 모시고 탐몰라주로 향하였고 그의 제자들과 함께 머물렀다라는

고려 대장경 법주기의 내용도

이 사리탑의 비밀과 함께 한다. 

 

때마침 이 존자암이 자리한 곳은

불래오름의 1280미터 지경 기슭으로

이곳은 예전부터 붓다가 오신 오름이라 불렸던 셈이다.

 

한라산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모인

영실의 존자암에서는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국성제도 올려졌었는데

이곳은 복원된 국성각이다.

 

긴장 상태로만 치닫고 있는 남북간의 문제도 잘 해결되어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없기를  

국성각 앞에서 기도한다.

 

종각 뒤로는 연지의 물이 흐른다.

그 물이 가는 길을 따라 산을 내려간다.

 

선래, 선래! 내가 잘 왔다 가긴 하는 건가요라고 마음으로 묻는데

갑자기 후두둑 벼락이 친다.

놀라 돌아보니 지붕 위의 눈들이 녹아 떨어지는 소리였다.

흰사슴 뿔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오래 살았다. 감사한다.

 

종종걸음치던 겨울의 한때

 

눈이 녹으면 우리의 발자국도 함께 녹겠지만

그래도 선래, 선래라. 괜찮다, 괜찮다.

새해에는 흰 사슴의 날개로 산을 날아오르는 꿈을 꾸며

스스로 행복하거라.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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