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고악이 보인다.
그러나 오늘 내가 오르고자 하는 곳은
논고악에서 남서쪽으로 1.5km 가량 떨어져 있는 보리악.
숲터널을 빠져나와
서귀포 방향으로 달리다가
돌하르방이 지키고 서 있는 이름없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면
모세혈관같은 숲의 계곡을 만난다.
숲이
나무가
나뭇잎이
그림자 놀이를 하고 있다.
계곡에서 그림자 놀이에 정신을 빼앗겼다.
나 또한 그림자.
무채색의 그 쓸쓸한 세계.
그 세계의 바위 빛깔이
사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모른채
그렇게 계곡을 건너고
또 그렇게 벼랑을 오르며
또다른 계곡을 만났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수없이 다른 길을 건너고 또 건너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왜 그렇게 벼랑을 오르고 올랐는지 스스로 알았어야 했는데
기준이 사라진 자리에서 방향을 세워봐야 이미 늦었다.
두시간여의 헤매임 끝에 정상에 섰다.
성널오름이 마주하고 있다.
아차 싶다.
한라의 앉은 모습도 낯이 익다.
아차 싶다.
여기가 어딘가 싶다.
한라산, 사라, 성널로 이어지는 길 위에 섰다.
논고악이다.
지금껏 보리악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논고악에 올라버린 것이다.
어쩌리.
오르지 못한 보리악은 그리워서 좋고
다시 오른 논고악은 새로워서 좋다.
사라오름
사려니오름
동수악과 여문영아리, 물영아리
강풍 속의 세 시간여를
계곡과 벼랑을 건너 만난
숲의, 첫, 봄, 꽃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감장돌다가
어쩌다 맑은 물을 만나면 제꼴을 비춰보며 웃는다.
길을 헤매어도 산이 좋기에 그저 괜찮지만
물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는 눈가에는
가벼운 아쉬움이 맺혀있다.
'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오름 꽃길 (0) | 2013.05.12 |
---|---|
비치미와 도리미 (0) | 2013.04.28 |
좌보미 (0) | 2013.03.03 |
백약이의 정월대보름 (0) | 2013.02.24 |
수망리 민오름 (0) | 2013.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