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0. 비에 젖은 네가 웃는 것, 무지개
야로라는 시골을 지나고 있다.
소나기가 내렸고 무지개가 떴다.
시골 무지개를 보며 생각한다.
밝은 지혜로 슬픔을 보면 자비의 무지개가 뜨는가
해인사에 도착했다.
마음 저 깊은 자리에
아득한 아름다움으로 새겨져 있는 곳.
오늘 찾아가는 곳은
그 아름다웠던 해인사의 원당암
원당암의 미소굴
미소굴 그 계단을 아무 생각없이 오른다.
공부하다 죽어라!
계단을 올라서니
가야산인 혜암이 덜컥 벼락을 내려친다.
공부하다 죽어라!
미소굴
공부하다 죽어라는 벼락을 내리치고
혜암스님 미소하시던 곳
혜암스님
해인총림방장을 지내시고 조계종 10대 종정을 역임하셨다.
주인공아 내 말 들어라
아침 저녁 뜬 생명이 그 얼마인가
어제를 허송하고 오늘도 그러하면
나서 오고 죽어가는 곳 어딘지를 알 것인가
혜암스님 다음으로
누가 먼저 미소지을지 모르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늘도 미소굴은 분주하다.
미소굴에서 바라보이는
가야산의 정상과 여기저기 해인사의 전각과 암자들.
이 미소굴이 자리잡고 있는 원당암은
신라 애장왕(哀莊王)이
공주의 오랜 병을 낫게 해준 순응(順應)대사를 도와 창건한
해인사 최초의 암자로 알려져 있다.
애장왕은 서라벌을 떠나 가야산에 임시로 작은 집을 지어
절 공사를 독려하고 정사(政事)를 보기까지 하였는데
최초에는 봉황이 날개를 편 비봉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봉서사라 불렀다 한다.
그러던 것이
진성여왕 때부터는 국가의 원당 역할을 맡게 되면서
비로소 원당암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보광전과 다층석탑
원당암 다층석탑
일반 재가 불자들도
안거 수행할 수 있는 국내 제일의 재가 불자 참선 도량이어서 그런지
법당의 독경소리 우렁차고 곳곳에 힘이 넘쳤다.
원당암까지 걸어온
노보살의 지팡이조차 강건하게 느껴진다.
역시 해인사하면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