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3 오후
전남 화순의 영구산 운주사
천불천탑의 골짜기
너도 구름, 나도 구름.
그렇게 모두 꿈을 꾸는 구름
그곳에
구름이 되어 다시 흘러들었다.
지나온 자취를 남기지 않는 구름처럼
그렇게 그렇게 흐르듯 걷는다.
깊숙이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그렇게 그렇게 걷는 것만으로도
다른 우주를 방문한 듯한 낯섬과 설레임이 이곳에는 있다.
쌍교차문 칠층석탑.
탑신석의 기하학적 무늬들은
국내석탑에는 유례가 없는 양식이다.
누구일까.
이 석탑을 새긴이는.
광배석불좌상
이 광배석불좌상은
운주사 석불 가운데 마애여래좌상과 함께
유일하게 광배가 표현된 불상이다.
언제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
아직도 발혀지지 않고 있는 이곳은
1632년 조선 인조 10년 발간된 능주읍지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씩 남아있다'는 기록을 끝으로 폐사된 것으로 보아
정유재란으로 인해 소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석탑 17기와 석불 80여기만이 남아있다.
운주사 골짜기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에는
두 개의 탑 사이에 석조불감이 자리잡고 있다.
감실 앞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하루해가 어느만큼 남았는지 알 수 있다.
수인도 다르고
미소도 다른 쌍배불상
원형의 다층석탑.
운주사 골짜기 중심에 석조감실을 세우고
골짜기에 흩어진 모든 석불석탑의 주존불로
쌍배불상을 모셨다.
골짜기가 끝나는 곳에
운주사.
대웅전
대웅전에서
잠깐 반가부좌를 튼다.
구름이 쉬어갈 곳이 또어디 있으랴만.
호흡을 가다듬고
운주사를 둘러싼 뒷동산으로 오른다.
여기에도
머물만한 장소에는
어김없이 불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상처받고 위로받고
그렇게 세월을 견딘 불상은
거울 속 제 자신의 모습과 다름없어 보인다.
동산의 산책로를 따라 오르는 길
너른 골짜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러니 하늘이 정한 자리라는 말을 하나보다.
탑들도 어느 하나 규칙적인 것들이 없다.
탑을 조성한 이들 역시 그러했을 것으로 보인다.
석벽의 마애여래
거북바위의 교차문 오층석탑과 칠층석탑
탑신의 기하학적 무늬와 옥개석 상면의 우동마루 등은
한국석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양식
거북바위
어디든 법당이다.
이곳에서는 서 있는 것이 여래.
앉아 있는 것이 여래, 그리고 누워 있는 것이 여래.
모두가 여래가 된다.
운주사 와불.
구전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지세는 동쪽으로 기울어진 배의 형국이어서 나라의 운세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도선국사는 이곳에 천불천탑을 일으켜 세워 나라의 운세를 평안하게 하고자 했는데
그 일은 별빛 고운 날의 고운 시간에 모두 이뤄내야 했다.
도선국사는
하룻밤 동안 천불천탑을 세우기 위해 하늘의 석공들을 불러들였는데
그들은 해가 뜨면 이 땅에 머물수가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하늘의 해를 붙잡아 매어 놓고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만 어린 사동이 첫닭 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공들은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하늘로 돌아가 버렸다.
와불을 일으켜 세우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한다.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이 땅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민초들의 믿음은
그날도 지금도 여전하다.
사람들의 고달픈 삶이 지속되는 한 아마도 그 희망은 계속 유효하겠지.
칠성바위 앞 칠층석탑
북두칠성 자리와 그 배치가 비슷한 칠성바위.
하늘 석공들의 고향이 북두칠성이었던 모양이다.
해가 지는 길을 따라 걸어내려온다.
운주사.
만나서 행복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골짜기 여기저기서 마주치게 되는 운주사의 여래들처럼
우리 스스로도 그렇게 여래처럼 만나지며 살아야 되는 게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