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읍 교래리 붉은오름 자연 휴양림에서
말찻오름을 찾는다.
해맞이숲길이라 명명된 길을 따라 약 6.7km.
왕복 2시간 30여분 정도가 소요된다.
말찻오름이란 이름은
'작은' 혹은 '아래'라는 뜻을 지닌 제주어 '말젯'과
잣[城]이라는 의미의 '찻'이 합성된
'아래에 있는 잣[城]'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고
말을 방목하던 곳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삼나무에 가려져 버렸지만
이 일대에는 군데군데 잣성의 흔적이 남아
말테우리들의 삶도 되짚어보게 한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 중 '산장구마'는
이 말찻오름과 물찻오름 일대의 방목장에서
말을 모아 취합하는 대대적인 행사 장면을 그린 것이다.
1702년 10월 15일 산장에서
제주판관, 감목관, 정의현감이 참가한 가운데
결책군 2602명 구마군 3720명 보인 214명이 동원되어
마필수를 확인하는데
그 날의 마필수는 2375필에 달했다.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제주의 고질적인 폐단을 이야기 하면서
그중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삼읍의 수령이 모두 그 관할지역 안의 말을 장부에 올려서 공공연히 강압적으로 빼앗는다.
한 필의 말을 빼앗기면 열 식구가 굶주리고 추위에 떤다.
둘째는 장부를 보고 끌어와서는 날마다 때려죽여 주방의 필요에 충당한다.
만약 수령들의 연회가 절제 없다면 1년에 쓰이는 것이 많게는 300에서 400여마리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점마하러 나오면 삼읍백성들이 모두 문안드리고 대접하는 일에 분주하여 농사일을 망치게 된다.
또 풍문으로 어느 마을 어느 사람에게 진상마로 쓸 만한 말이 있다고 하면
관리를 보내 그 사람을 잡아다 놓고 독한 매질을 견디지 못하게 하여
아무 말이나 바치면 풀어준다.
그 고단했던 길.
어려 어려 어려 어려 어려
어허두리 두럼 어려 얼렷 어려 얼렷
어려려 허허허 야아디여
어기영아 허허
어 어 로로로로려려려
길고 낮은 소리로
말들과 함께 하던 그들은 그 길 어디쯤에서 쉬어갔을까.
쉬엄쉬엄 오르는 길.
말테우리와 말들이 사라진 숲 속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만 날카롭게 우짖는다.
새소리를 따라 걷다보니
오름 삼거리를 지나고
말찻오름 입구에 다다랐다.
2월의 햇살이 봄과 같은데
오름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있다.
겨울풍경
꾸밈없는 그 모습에 마음이 닿는다.
역시 겨울산이다.
정상에 가까워오자
옆으로 슬금슬금 따라오는 물찻오름.
표고 653.3m.
말찻오름 정상.
옛 산패들이 간단한 요기를 하고 갔음직한 넙적 바위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사람이 들지 않는 것을 알았는지
바위 위에는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섰다.
저편에는 한라
이편에는 물찻
여문영아리, 물영아리
하나하나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그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절물, 민오름, 지그리, 바농, 새미
기억하는 만큼만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