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꼭 걷고 싶었던 길.
볼래오름에서 이스렁을 찾아내는 길.
그 꿈을 오늘 풀었다.
영실 입구의 존자암에서
볼래오름을 거쳐
이스렁을 딛고
천백고지로 내려올 계획으로
머리속에 지도도 그려보았지만
숲으로 들어서니 모든 것을 잊고만다.
그저 한발한발 내딛다가 멈춰서 쉴 뿐.
그렇게
존자암에서 볼래오름 정상까지 1시간 10여분.
크게 어렵지 않은 길이다.
길은 크게 어렵지 않지만
그 풍경만큼은
결코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것들이 아니다.
볼래오름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영실의 모습.
가히 영실(靈室)이라는 이름이 걸맞는 이곳.
눈을 감고 마주하면
온몸에 초록의 싱그러운 기운이 차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길은 지금부터 시작.
오늘의 목적지인 이스렁 오름으로 방향을 잡는다.
지금부터는 오직 이스렁만을 바라보며
숲을 헤쳐가야 한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까보냐.
옷깃 잠깐 스친 듯 해도
마음 깊이 들어앉은
한라의 꽃.
숲을 포복으로 기어
이스렁오름의 바로 밑까지 도착하니
홀로 산을 찾은 이를 위해
산이 내어놓은 맑은 차.
산향 가득한 맑은 물로 목을 축이고
잠시 쉬었다.
깊은 산속에서 만난 물가에서 쉬어가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 않나 싶다.
목을 축이고
고개를 드니
이스렁오름.
표고 1353m 비고 약 70m의 원추형 오름으로
남북 두 봉우리 사이의 안쪽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이스렁 옆에는 쳇망오름.
망체오름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쳇망오름의 와전으로 보고 있다.
쳇망오름의 남동쪽으로 내려 진모루를 오르면
웃세오름 등산로 변에 있는 만수동산으로 빠진다.
산이 휘감아 감춘 영실.
볼래오름.
볼래오름 정상에서 이곳을 바라보며
늘 걷고 싶었던 길.
숲을 헤쳐오느라
온몸이 가시에 긁히고 찢겼지만
소망을 이룬 마음은 가뿐하고 상쾌하다.
이스렁을 오른다.
산철쭉들이 하나둘 봉오리를 터트리고 있다.
오월 하순이면 절정을 이루지 않을까 싶다.
멀리 산방산.
출발할 때부터 내내
함께 하고 있다.
쳇망도 어느새 벗이 되어 함께 한다.
볼래오름이 지켜보고 있다.
내가 그랬듯이 또 누군가가
이스렁을 바라보며 그 거리를 가늠하고 있을 듯하다.
이 길은
가늠했던 것보다 깊었고 멀었다.
산에서는 가늠 따위는 버리고
산철쭉이 어디까지 내려왔나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뿐.
그렇게 도착한 이스렁의 정상.
정상에는
굼부리 대신에 드넓은 평지.
산사람들의 흔적.
바람도 올라오지 못한 이곳까지
많이도 다녀갔구나.
따스한 기운을 담뿍 안고
모두들 평안한 길을 다니시길 바란다.
오름의 정상에 서서 동서남북을 바라본다.
천백고지가 보인다.
하산해야 할 방향이다.
다리에 쥐가 나서 그런가.
돌아갈 길이 참으로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가는 길에도
함께 하는 볼래오름.
서서히 멀어지는 영실.
다시 산방산.
그렇게 저렇게
영실에서 아침 9시에 출발하여
볼래오름과 이스렁오름을 거쳐 천백고지로 내려오니
오후 3시.
한나절 동안 함께 한 한라의 기운으로
한달은 미소짓고 살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