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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담양 추월산 보리암

by 산드륵 201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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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30일 오전 

 

전남 담양군 용면 월계리 추월산 앞에 섰다.

20여년 전인지

10여년 전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느 겨울에

무작정 눈길을 헤쳐 올랐던

추월산의 보리암.


 

 

과거로 물러난

조각난 기억들은

빗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땀에

말끔히 씻긴다.

 

 

저 보리암까지

약 1.2km 남짓한 길이지만

산바람도 태워버리는 정오의 햇살을 마주보며 걷느라

자꾸 더뎌지는 걸음.
 

 

그렇다면 쉬어가야지.

 

 

담양호.

 

 

산기슭을 적시며 흐르는 물길.

우리도 누군가의 기슭을 적시며

그렇게 수많은 능선을 넘어왔구나.

 

 

덕령.
 

 

보리암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바위에 새겨진 명문들.

새로 만들어진 나무다리에 가려지고

오래된 이끼에 덮혀

그 모든 것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곳은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부인인 흥양 이씨의 순절처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소중한 뜻을 지키고자

결연한 추락으로

마침내 비상한 이들.

잡것들은 흉내낼 수 없다.

 

 

백척간두에서 한 발 내딛었으나 결국 비상하였을 때

그가 의인인지를 그제서야 알게 되니

눈 어두운 사람들의 세상은

그래서 슬프다. 

 

 


임란의 또다른 희생자들.

두려움을 안고 추월산으로 스며들었으나

이미 이곳에 이르러 마음은 맑게 씻기었으니

그들의 영혼에는

한 점 미련이 없었으리.

 

 

보리암.

 

 

걸어들어오는 우리에게

내려가던 이가 건넨

복숭아 두 알.

이유없이 마음이 짠해져서 건넨다는데

받는 마음도 이유없이 짠해온다.

 

 

추월산 기슭의 보리암.

큰법당과 요사채가 전부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 18교구 백양사의 말사인 보리암은

고려 보조국사 지눌 선사가 창건했다.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었으나

1607년 선조 40년과 1650년 효종 1년에 중수되었다.

 

 

보조국사 지눌이

지리산 상무주암에 있을 때

나무로 3마리의 매를 조성하여 날려보냈는데

불좌복전(佛座福田)을 찾아 날아간 매는

송광사, 백양사
그리고 이곳 보리암에 내려앉았다 한다.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담양호

 

 

오래 기억될 풍경.

 

 

큰법당 내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봉안하고

왼쪽으로 지장보살과 칠성탱화

오른쪽으로 산왕대신 나반존자를 모셨다.

 

 

석가모니불과 협시 보살.

법안(法眼)으로 보면

번뇌가 곧 보리(菩提)이니

내가 고요하면 세간의 들끓음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내가 평안하면 세간의 고통 속에 있어도 흔들리지 않으니

이것이 내가 평안하면 세상이 평안하다는 화엄경의 이치인듯 싶다.
 

 

불타는 화로를 머리에 이고 사는 중생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자비의 손을 놓지 않으실

지장보살.

 

 

치성광여래와 칠성.

북두칠성이 반짝인다.

모든 번뇌의 속성이

화로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같음을 알고

삶의 두려움을 떨쳐버리라고

용기를 주신다.


 

 

초연하게

남에게는 온화하게

일이 없을 때는 맑게

그러나 유사시에는 감연히

그러다가 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때로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히

그렇게 그렇게 사바에서 살다가라.

 

 

그렇게 그렇게

입속에는 말이 적게

마음에는 일이 적게

위장에는 밥이 적게

밤에는 잠이 적게

이 네 가지만 적게 해도

그대는 곧

사바에서 사바를 건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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