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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순창 강천산 강천사

by 산드륵 2015.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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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30 오후

전북 순창 강천산 군립공원에는

피서객들이 한창이다.


 

병풍폭포.

높이 40m 물폭 15m.

죄를 지은 사람도

폭포 밑을 다녀오면 깨끗해진다는 곳. 

 

 

신선교 밑에서는

다들 신선놀음.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응급실에서 머리를 여섯 바늘 꼬맨 나로서는

그저 부지런히 땀을 흘리며

이 길 끝의 강천사로 향할 뿐이다.
 

 

나무다리와 징검다리
 

 

그 다리 건너 부도밭.

그러나 강천사는 부도밭에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길.


 

길이 있어

사람들은 그나마 쉰다.


 

길이 있어

때로 멈춘다.


 

멈추고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


 

그리고

길 위의 절로 스민다.


 

길가의 풀꽃처럼

수수한 풍경의 강천사.


 

수수한 돌로 빚은

이런저런 마음.


 

폐사지에 쌓아올린

이런저런 마음.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강천사는

조계종 제 24교구 선운사의 말사.

887년 진성여왕 1년 도선국사가 복천사라는 사명으로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명적암, 연대암, 용대암, 왕주암, 지적암 등을 거느렸다.

특히 왕주암은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 할 때

후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지금의 나주 지방인 금성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그때 머물렀던 절이라 하여

왕주사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옛 사찰은 소실되고

이후 1604년 선조 37년 소요대사에 의해 중창되기도 하였으나

다시 한국전쟁으로 인해 모두 소실되었다. 

 

 

복천사가

강천사로 명명하게 된 것은

선조 때 학자 송익필이

이곳에 유숙하며

숙강천사라는 시를 지었는데

이때부터 이곳을 강천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현재의 강천사는

1959년에 김장엽 스님에 의해 다시 세워진 것이다. 

 

 

강천사 오층석탑


 

임란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모든 것이 불타 없어졌으나

이 오층석탑만 남았다.


 

오층석탑의 기억에 의지하여

다시 세워진 대웅전.

옛 이름은 보광전이다.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봉안하고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전쟁의 고통과 약탈의 땅 위에 좌정하였으나

애잔한 미소는 여여하다.

 

종각.
 

 

녹슨 쇠기둥과 쇠사슬.


 

그러나

종소리는

맑아

이 땅에 스민 모든 아픔을 보듬는다. 


 

흩어진

옛 기억들.

 

 

하나둘

옛 기억들이 모여

탑이 된다.
 

 

풍경소리가 일깨우는 기억.

 

 

기억의 탑으로 쌓아올린 생애 위에서

잠시 멈춤.

 

 

쌓아올린 현재 위에서

잠시 멈춤.

 

 

저마다의 자리에서

잠시 멈춤.

 

 

파편 위에서

잠시 멈춤.

 

 

멈춤.

 

 

멈추고

다시 망상.


 

망상으로 쌓아올린 탑 위에서

다시 더해지는 망상.

그만 하자.

 

 

이대로 족하다.


 

잠시 쉬었으니

이대로 감사하다.

이 좋은 길 위의 벗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 하나를

망상으로 더 쌓아 올렸을 뿐

이 길은 그대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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