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품 속 능화오름 가는 길.
천산 입구에서 무작정 들어섰지만 길이 없다.
흐리고 낮은 하늘
아침인데도 어둑어둑한 숲
그리고 까마귀떼들의 울음소리뿐인 곳.
그러나 걷기로 한다.
표고 약 976m의 능화오름은
능선조차 보이지 않고
빽빽한 조릿대 길 속에 갇혀
잠시 쉬어갈 공간조차 없지만
그냥 걷기로 한다.
이 결고운 가을을 두고
그냥 돌아설 수는 없지 않나.
길 위에서 만나는
초록의 시간과 가을의 시간.
쌍방쌍수雙方雙收가 동생동사同生同死구나.
한 잎 지고
또 한 잎 지는 풍경 앞에서
서서 쉰다.
애당초 길이 없었기에
길을 잃었다고도 할 수 없겠지만
2시간여를 넘게 걸었어도
능화오름의 능선이 보이지 않아
방향을 잡는데 애를 먹었다.
산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는
계곡을 찾아 흐름을 가늠하거나
산의 능선을 찾아보면 도움이 되는데
능화의 깊은 숲속은
계곡도 여러 갈래이고
더구나 능선은 보이지 않아
걸음을 놓는데 시간이 걸렸다.
어쩌리.
빛고운 가막살이.
유난히 싱그러운 굴거리의 길.
그리고 거친 계곡을 건너
드디어 능화의 능선을 따라잡았다.
2시간 반여만에 찾아낸
능화의 능선.
반갑다.
그리고 계곡에서
곧바로 치고 올라오니
바로 능화오름의 산신터로 떨어진다.
능화오름 인근에는
능화동이라는 화전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산에 의지하여 살던 그들이
산신재를 지내던 곳.
제주의 돌담은
최초에 마을 당과 같은 신앙시설의 경계로 세워졌을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곳 산신터 역시
돌담으로 에워져 있다.
산신터에서 비로소 잠시 쉬고
하산길을 찾았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들 역시
사방으로 뻗어있다.
탐라계곡이 흘러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낙엽과 조릿대의 길
경사 70여도의 가파른 등성이를
조심스럽게 내려올 수만 있다면
가을에 한번쯤은 찾아볼 만한 좋은 길이다.
낙엽.
수수한 가을 잎새.
빛깔을 벗어버린 산수국.
담담한 가을빛이 아름다운
능화오름의 풍경.
끝도 없는 조릿대.
조릿대 속의 습지.
다시 두 갈래길.
처음에 올라왔던 천산 방향으로 꺾을까 하다가
그냥 가던 길을 가기로 한다.
서탐라골과 동탐라골이
능화오름 근처에서 합류되어 한천을 이루는데
이 한천 계곡을 타고 내려갈 수 있다.
또다시 갈래길.
초행자들은
천산에서 올라가는 길보다
이곳 계곡 옆으로 올라오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할 듯하다.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능화오름의 계곡
이곳을 흘러
방선문을 지나
용연으로 들어가는 한천 계곡.
탐라교육원 정문에서
건널목을 건너면
숲길로 이어진
이 길을 만날 수 있다.
가을 길을 천천히 걷고 싶은 이들에겐 이 길을.
숲속에서 나침반을 읽으며 두어시간 떠돌고 싶은 이들에겐
천산에서 들어가는 길을 권한다.
두 길 모두 지금 가을이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