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산행으로 지친 다리도 풀겸
안덕면 화순리 논오름에 올랐다.
산방산을 바라보며 가벼이 걷는 길.
옛날부터 논이 있어서
논오름이라 불렸던 이곳.
그러나
지금은 아무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아무 생각없이 걷기로 했다.
표고 186m의 야트막한 산체.
산방산과 단산.
군산과 다래오름
한라.
그리고
화순리 곶자왈.
오름도 오름이지만
제주의 목숨은
이제 곶자왈에 달렸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논오름 등성이의 풍경.
오름 정상 바로 아래까지 시멘트 길이 뻗어있고
그 길 끝에 펜션이 들어서 있다.
그 펜션에서 올라오면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듯한 다실이 있다.
다실에서 50여m 정도 떨어진 자리가
논오름 삼각점.
군산 너머로는
중국산 미세먼지에 가려
아득한 하늘.
산방산으로는
추사 김정희와 초의 의순선사가 타고 놀았다는 흰구름.
허공에
빛깔이 없는게
얼마나 다행이냐.
허공에
빛깔이 없기에
미세먼지도 구름도
결국은 거슬리지 않고 서로를 넘어 흘러간다 .
5월의 찔레들 역시
완벽하게 스스로를 드러내고도
허공과 부딪치지 않는다.
매사에 사소한 것들에 자꾸 걸려넘어지는 나에게
그들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다.
논오름 굼부리.
남동향으로 벌어진 말굽형 굼부리.
굼부리 안쪽의 움푹 내려앉은 곳은
둥근 화구의 흔적.
옴탕밭 혹은 홈밭이라 불렸는데
지금은 과수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논오름의 갱도 진지.
현재까지 이 논오름에서는 17개의 갱도 진지가 발견되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전세가 점차 수세에 몰리고
전장이 일본 본토로 접근해 오자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한 거점 지역으로 제주도를 선택했다.
미군 상륙 예상 거점 9곳 중에
8곳은 일본 본토였고 나머지 1곳은 제주도.
일본을 사수하기 위해 내려진 제주도의 본토 결전 작전.
그 결7호 작전에 의해 요새로 변해버린 제주도.
그 가운데서도
이 논오름이 위치한 화순 지역은
미군의 접근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판단되어
1945년 3월에서 5월경 사이에 진지 동굴 구축 작업이 가장 먼저 진행되었다.
미군 접근로를 차단하기 위해
주진지대를 형성한 후
일본군 제111사단을 배치한 것이다.
당시 사단 사령부는
안덕면 동광리 당오름 일대에 위치하고 있었고
이 논오름에는
제 111사단 245연대와 포병 부대가 배치되었다.
제주도의 일본군 진지 동굴들은
복곽진지, 주저항진지, 위장진지, 전진거점진지 등으로 분류되는데
논오름의 이 진지동굴들은
주저항진지.
이곳에서 싸우겠다는 뜻이다.
주력저항지대와 주력포병진지를 주체로 하는
주전투진지.
진지동굴 내부.
왜 제주도였을까.
제주도를 제압해야 서해와 동해를 제압하고
강대국의 참전도 조율할 수 있게 된다.
그 제주도에 해군기지도 생겼다.
다시 제주도.
보급이 한정된 섬에서의 전쟁.
제주도를 때리지 마라.
꽃으로라도 때리지 마라.
제주사람같은 제주의 봄꽃들.
제주의 봄꽃들은
그래서
이유없이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