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AMMA DISCOURSES
BY
VENERABLE SAYADAW
ASHIN JATILA
나모 땃싸 바가와도 아라하또 삼막삼붓따사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asambuddhassa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번뇌를 다 끊고
스스로 원만하게 정각을 이루신
부처님께 예경 올립니다.
사두! 사두! 사두!
Sadhu! Sadhu! Sadhu!
잘 했도다! 잘 했도다! 잘 했도다!
부다 사사나 씨람 티카투
Buddha Sasana Ciram Tikatu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지속하길!
존경하는 우 자틸라 사야도의 짧은 일대기
존경하는 사야도 우 자틸라는
1935년 11월 26일 북부 미얀마의 밍쟌 까도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우 마지와 도 파틸이었다.
그는 7살이 되었을 때
사야도 우 우따라의 지도 아래
지역 수도원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기 시작해서
10살 때는 아신 자틸라란 이름을 받고 사미로서 초보 교육을 받았다.
1956년에는 불교 교육의 중심지로 알려진 사가잉 산으로 진학해서
존경스런 우 위짜린다를 비롯한 또 다른 뛰어난 스승의 지도 아래 경전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 해에 정부 아비다마 시험(낮은 등급)을 통과하고
다음 해에는 중간 등급, 상위 등급과 정부에 의해 실시된 계율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존경스런 아신 자틸라는 상위계(higher ordination)를 받고
1955년 7월 24일 비구 승가에 입회되었다.
계를 받은 후, 연구를 계속해서
종교성 주관의 경전과 관련된 3개의 고등시험을 통과하고
1959년에서 1961년까지 사사나다지 시리빠와라 다마짜리야 상을 받았다.
1966년에는 마하시 명상 센터에 와서
존경스런 마하시 사야도의 대리인인 우 빤디따 사야도의 지도 아래
강도 높은 명상 수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위빠사나 명상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는
사가잉 산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빨리 대학의 빨리어 강사로 3년 동안 봉사했다.
1969년에 이르러서는
양곤에서 200마일 떨어진 판마나 타운으로 가서
마하시 명상 분원을 조직하고
10년 동안 가마타나자리야(법사)로서 봉사했다.
지난 15년 동안
그는 전 버마 마하시 법사 협회의 회장으로 지내왔으며,
1988년에는 버마 마하시 승가 협회의 공동 총서기로서 선출되었다.
현재 존경스런 사야도 우 자틸라는
양곤 마하시 명상 센터에서
외국인 수행자를 위한 명상 스승으로서의 주요한 소임 외에
법회 협의회의 회원으로서 활동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1 마하시 위빠사나 명상 방법
오늘 법문의 주제는 마하시 명상 센터의 설립자이신 지극히 존경스런 마하시 대선사께서 상세히 설한 위빠사나 명상 방법입니다.
마하시 대선사는 불법의 모든 경전에 나오는 갖가지 강론들을 엄밀히 조사하고 연구한 후 복부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채는 간단한 방법을 채택하셨습니다.
법의 손쉬운 이해를 위해서 대선사는 질문하고 답하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그 첫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빠사나의 지혜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고찰되어야 하는가?
위빠사나란 말은 최근에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위빠사나란 말을 광범하게 인용합니다.
위빠사나란 말은 현상의 무상한 특성을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와 같은 것들을 알아차림으로서 10가지의 위빠사나 지혜가 성취됩니다.
그것들은 삼마사나 지혜, 우다야바야 지혜, 방가 지혜, 바야 지혜, 아디나와 지혜, 니비다 지혜, 문치투 지혜, 까마티 지혜, 파티상카 지혜, 상카루페카 지혜, 아누로마 지혜 등입니다. 이러한 위빠사나 지혜의 총수는 10개입니다.
그럼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일어납니다.
마음과 물질의 빠리체다 지혜와 빠차야 빠리가하 지혜.
즉 수행 초기에 수행자에게 경험되는 처음의 두 지혜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이 두 지혜는 위빠사나 지혜에 포함되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이름의 결과가 원인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삼마사나 지혜에서 시작해 아누로마 지혜로 끝나는 열 개의 지혜는 직접적으로 위빠사나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빠리체다 지혜와 빠차야 빠리가하 지혜는 간접적으로 위빠사나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빨리어인 위빠사나Vipassană란 말에서 접두사 “Vi"는 직접적인 의미는 갖고 있지 않고 오직 passană만이 관찰(명상)이란 직접적 의미를 갖습니다.
빠리체다 지혜는 마음과 물질 사이를 구분하는 지혜이고, 빠차야 빠라가하 지혜는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지혜를 뜻합니다.
삼마나 지혜는 마음과 물질의 무상, 고, 무아에 관한 지혜입니다.
우다야바야 지혜는 모든 현상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지각함으로서 획득됩니다.
☾
다른 방식은
빠리체다 지혜로부터 아누로마까지 위빠사나 지혜로 바로 보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방식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위빠사나 수행을 마스터하는 것인가입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질문, 위빠사나 지혜를 획득하기 위해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집착의 5가지 집합체, 즉 5온을 관찰(명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질문에 관한 간단한 대답은 -일어나는 순간에 관찰-되지 않으면 집착을 면할 수 없는 마음과 물질의 5온을 관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가지 집합체 즉 5온은 다음과 같습니다.
⑴ 색온(色蘊 물질의 집합체)
⑵ 수온(受蘊 감정의 집합체)
⑶ 상온(想蘊 지각의 집합체)
⑷ 행온(行蘊 정신적 구성이 집합체)
⑸ 식온(識薀 의식적 구성의 집합체)
☾
만약 수행자가 우리 인간이 5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자아라는 실재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5온은 바른 지견과 이해를 통해서 관찰되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수행자는 어떻게 바른 견해로서 관찰할 수 있을까?
거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할까?
또는 다른 사람의 몸을 세밀히 조사해야만 할까?
자신의 몸을 고찰한다는 것은 수행자가 지금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
수행자가 행선을 할 때 왼걸음, 오른걸음, 또는 듦, 나아감, 놓음 등을 알아차리는 것은 대념처경에서 가르쳐준 것처럼 그 자신의 몸의 행위에 관해서 관찰하는 것입니다.
왼걸음을 알아차릴 때,
왼걸음은 색온이고,
좋고 나쁜 느낌은 수온이고,
알아차림(이름 붙임)은 상온이고,
걸음을 걸으려고 힘쓰는 것(노력)은 행온이고,
아는 마음은 식온입니다.
이것들이 집착의 5온에 대한 관찰(명상)을 구성합니다.
수행자가 이러한 바른 견해로 명상하지 않는다면 수행자는 내가 걸음을 걷고 있다, 나의 다리가 걸음을 걷고 있다, 움직임을 아는 것이 ‘나’다라고 하는 환상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5온에 대한 집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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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을 할 때 앉음, 닿음을 알아차립니다.
앉는 자세는 색온이고
좋고 나쁜 느낌은 수온
알아차리는 것은 상온
노력하는 것은 행온
아는 마음은 식온입니다.
☾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차릴 때,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은 색온
좋고 나쁜 느낌은 수온
알아차리는 것은 상온
숨쉬려고 하는 노력은 행온
아는 마음은 식온입니다.
이것들이 5온의 집착에 대한 명상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같은 것이 들음, 봄(見) 등에도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왼걸음, 오른걸음, 듦, 나아감, 놓음, 일어남, 사라짐, 들음(聞), 봄 등에 대한 알아차림은 5온에 대한 관찰입니다. 이것이 바른 견해를 가지고 5온에 대해 관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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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선할 때 왼발, 오른발, 또는 듦, 나아감, 놓음 등을 알아차리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걸을 때 마음과 물질에 대해 알아차리면 그것은 불필요한 잘못된 것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짐도 알아차리려 하지 마십시오.
단지 실제 행위, 현재 순간에 일어나는 실제적인 움직임만을 알아차리십시오.
다른 정신적, 육체적 현상들도 또한 매순간마다 알아차려야 합니다.
왜 그리고 언제 관찰해야 하는가
첫 번째는 왜 5온에 대해 관찰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승진할 목적으로? 월급 인상을 위해서? 건강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두 번째는 언제 명상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 현재 또는 미래인가?
대답은 집착하기 않기 위해서 반드시 발생하는 순간에 관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일어나고 사라짐, 나아감, 봄, 들음, 먹음의 순간에 관찰한다면 집착은 방지될 수 있습니다. 대념처경에서 수행자는 집착, 탐욕, 분노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에 육체적, 정신적 현상을 알아차려야 한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수행자들은 정신적 현상을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려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정신적 현상에 대한 집착이 발전할 것입니다.
같은 것이 감정에도 적용됩니다.
감정도 탐욕, 분노를 방지하기 위해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려야만 합니다.
정신적 형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탐욕과 분노, 집착의 발전을 예방하기 위해서 발생하는 순간에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왜 그리고 언제 관찰되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은 집착과 탐욕, 분노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답변되고, 모든 정신적 육체적 현상은 일어나는 순간에 관찰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일어나는 순간에 관찰하는데 실패하면 집착은 발전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소리를 들을 때 알아차림에 실패하면 즐거운 소리에 대한 집착이 증가할 것입니다.
봄에 대한 알아차림이 실패하면 아름다운 시각과 멋있는 외모에 대한 집착이 발전할 지도 모릅니다.
그 후 어떤 이는 5온으로 이루어진 것이 좋고 아름답고 영원하다고 가정할지 모릅니다.
또는 들음, 봄은 나이고, 그것은 나에게 속한다라고 주장할 지도 모릅니다.
그와 같은 환상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물질이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관찰해야 하고 그럼으로서 집착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수행자가 모든 정신적 육체적 현상을 알아차린다면 그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마음과 물질이며 거기에는 어떤 집착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반드시 일어나는 순간순간마다 모든 현상을 알아차림으로서 자아 또는 인성이라는 실재에 대한 믿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만약 수행자가 그와 같이 관찰하였다면 그 자신의 통찰의 지혜에 의해 모든 것은 무상하며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수행자가 통찰의 지혜를 즉각적으로 깨달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얼마동안 명상한 후에 수행자는 처음으로 뻐근함, 경직, 초조, 통증과 같은 자연적이며 특유한 현상을 이해할 것입니다.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할 때 그 과정의 특성을 알게 됩니다.
수행자가 웨다나(감정 또는 감각)에 대해 명상할 때 감각의 특성에 대해 알게 됩니다. 만약 명상하지 않으면 그것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자연적이며 특유한 특성을 이해한 후에 수행자들은 시작, 중간, 끝(순간의 3짝)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한 후, 수행자는 일반적인 특성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일련의 검은 개미들은 멀리서볼 때는 그것은 하나의 줄로 보일 것입니다. 그것을 더 정밀하게 관찰하면 한 줄에서 차례로 움직이는 곤충을 보게 될 것입니다. 좀더 정밀히 조사하면 각각의 개미는 머리, 허리, 꼬리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수행 초기에 수행자는 일반적인 특성들만을 알게 되지만 알아차림이 성숙되면, 순간순간의 변화하는 조건들을 인식하게 됩니다.
수행을 더 함으로서 수행자는 현상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대상들의 나타나고 해체되는 본성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에 의해 우리는 모든 것은 무상하며 단지 현상의 일어나고 사라짐(생멸)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와 같은 지혜는 무상을 관찰하고 탐구하고 파악하고 또는 확정하는 지혜인 것입니다.
동시에 수행자들은 일어나서 바로 사라지는 모든 것을 소중히 간직하거나 의존할 가치가 없으며 고통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고통의 특성입니다.
또 다른 깨달음은 어떤 것도 수행자의 의지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아의 특성 라카다입니다.
이제 그는 무상, 고(불만족), 무아가 주요한 특성(法印)임을 깨닫게 됩니다.
답변의 마지막 부분은 집착이 사라지면 수행자들은 도에 들어선 것이며 종국에는 열반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러한 각성 뒤에 수행자는 그 자신의 명상과 함께 계속 나아가며 실제적인 육체적 움직임 이전에 먼저 의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걸음 딛기 전에 걸으려고 하는 의도가 선행하고 앉을 때는 앉으려는 의도가 먼저 앞섭니다. 이것에 의해 수행자들은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지혜를 깨닫습니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지혜를 인식한 후 수행자들은 각각의 알아차림(이름붙임-mental labeling) 후에 현상이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따라서 수행자들은 모든 현상들이 그 자체로 해체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해체되는 특성을 발견한 후 수행자들은 계속해서 고통, 따분함, 구역감 등을 알게 되고 해탈을 열망합니다. 수행자들은 해탈을 위해 노력하고 더 깊은 수행을 통해
정신적 육체적 현상에 대해 평온하게 볼 수 있는 지혜를 획득합니다.
이 단계에서 수행자들은 닿는 점(touching point)들이 줄어들고 감소해서 알아차려야 할 더 이상의 육체적 현상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닿는 점의 알아차림을 늘여야 합니다.
닿는 점의 사라짐을 찾아서는 안 되고 알아차림 되는 것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얼마 후에 알아차림(awareness)이 더욱 빨라지면 갑자기 모든 현상의 과정이 소멸함을 깨닫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일어난 것들은 그 자체로 사라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차리는 오랫동안의 노력 뒤에 육체와 마음 또는 현상의 과정의 소멸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으로 과(果)의 지혜가 생깁니다.
수행자들이 5온의 집착의 사라짐을 깨달을 대 과(果)의 길에 들어선 것이며 종국적으로 열반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위빠사나 수행의 방법은 유일한 길이며 사람의 기억 속에 영원히 담겨져야만 합니다.
가장 존경스런 마하시 대선사께서 조건이 허락할 때마다 위빠사나 명상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모든 수행자들이 마하시 대선사의 가르침을 준수하고 위빠사나 명상을 부지런히 수행해서 모든 고통의 종식 모든 현상의 소멸 즉 열반을 획득하기를 요청하며 법문을 끝마치고자 합니다.
착하도다!
착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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