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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있는 자는 와서 보라

DHAMMA DISCOURSES...3

by 산드륵 2009.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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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오늘 법문의 주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3 가지 종류의 일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중요한 것이고, 어떤 것은 더 중요하며, 또 어떤 일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중 오늘의 법문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에 관한 것입니다. 모든 중생은 이뤄내야 할 각각 다른 종류의 일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그 자신의 우선권에 따라 중요시됩니다.


 우리가 만약 세계의 상황을 둘러본다면, 어떤 국가는 통일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것이 우선적인 일이 된 것은 전쟁 후에 분단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국가들은 그들의 정치적 체제를 바꾸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상황에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떤 국가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승리하기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에 그들의 우선하는 중요한 기능입니다. 어떤 국가는 다른 국가와의 비침략 조약을 협상하고 있습니다. 어떤 국가는 그들 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격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 당시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사회에서 가장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교육과 건강, 설비와 경제적 복지를 제공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가장 중요한 일이자 의무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집에서 이뤄내야 할 매우 중요한 일들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그들 각각의 견해에 따라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들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 비구여. 가슴이 창에 찔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을 빼어내고 바로 치료를 받는 일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머리카락이 불타고 있는 사람에게는 곧바로 불을 끄고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 이러한 문제들은 현생을 위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중생들을 위해 윤회의 다음 생을 고려한다면, 가장 중요한 일은 자아에 대한 믿음, 즉 아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가정이 건강상의, 교육의, 혹은 경제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 가정은 이것들을 먼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간주하겠지만, 만약 같은 시간에 사고가 발생해 그의 가슴이 창에 찔린다면 그와 같은 문제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이가 여행을 계획했다면, 여행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긴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우연히 그 머리에 불이 나면, 이제 여행 준비는 두 번째 중요한 일일 뿐입니다. 이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머리에 붙은 불을 끄고 곧바로 의료적인 도움을 얻는 일입니다. 이것이 세속사이거나 현생에서의 활동들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윤회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아가 있다는 믿음을 제거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즉 그것은 자아나 영혼이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견해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카디티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sak'이란 말은 ‘분명한’이란 뜻이고, ‘kāya'는 물질과 마음의 분명한 존재를 말합니다. 그 말이 분명한 존재를 의미한다면, 분명하지 않은 존재 또한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만약 ‘머리카락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뼈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라고 질문해 본다면 인간이란 존재를 분명한 존재라고 말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불교의 가르침의 방법처럼 정의한다면 인간과 같은 그런 존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물질과 마음이란 분명한 존재입니다. 머리카락이 물질인가라고 물으면, 예, 그것은 물질입니다. 뼈나 살이나 콩팥이나 심장과 같은 다른 장기가 물질인가? 라고 물으면, 예, 그것은 물질입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 존재란 육체로서의 루빠(rūpa, 물질)와 마음으로서의 나마(nāma)밖에는 없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오직 물질과 마음뿐이고 남자나 여자는 없습니다. 따라서 불교적 개념으로 말한다면 자아나 아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 또는 ‘자기’,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고, 단지 우리가 마음과 물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상식적으로 신원 증명을 위해서나 남자와 여자와 같은 인간을  참고할 뿐, 법의 영역에서는 자아나 아상이란 없습니다. 단지 마음과 물질만이 존재합니다. 사카디티란 존재의 집합을 의미하지만, 나쁜 의미를 함축하지는 않습니다. 부처님이나 다른 성인들 또한 사카를 가지고 있고, 여기 수행자들 또한 사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물질과 마음의 존재로 구성된 하나의 집합체임을 의미합니다.


 사카와 디티와 결합할 때, 자아, 인성과 같은 존재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사카디티가 됩니다.  사실 마음과 물질은 마음과 물질일 뿐, 그것이 나에게, 혹은 우리들에게 속한다고 표현될 수 없습니다. 5온은 우리의 마음이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법(法, dhamma)의 과정에 따라 일어날 뿐입니다. 5온이 만약 우리에게 속한다면 늙지 말거나 병들거나 죽지 말라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은 우리들의 명령을 경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과 물질의 집합체(5온)는 우리들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5온)이 우리들의 몸, 영혼, 아상(我相)과 자아라는 실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대부분은 이 사실을 포용하려 들지 않고 그것(5온)을 자신의 마음과 몸으로 믿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5온을 위하여 해악한 행위나 불건전한 행위를 합니다. 그들은 자아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나 아들, 딸, 친척들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기꺼이 불건전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현생에서 감옥행 같은 악행으로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재생의 윤회 과정 속에서 다음 생애는 고통스런 삶을 갖게 될 것입니다.


 현생에서의 고통과 내생에서의 불행의 원인은 사카디티에 있음으로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카디티를 제거하고 극복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이런 잘못된 견해를 버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셨고, 경전에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카디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알아차림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기 우리 수행자들이 수행하는 방법, 즉 알아차림 명상(satipatthāna vipassanā)이 그것입니다. 수행자들이 명상 수행에서 매일 하는 것은 복부의 일어나고 사라짐과, 행선에서 들고, 내리고, 놓는 발의 동작을 알아차리는 것인데, 그것의 목적이 바로 사카디티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자아의 존재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축출하는 첫 번째 단계는 마음과 물질의 차이점을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처음에 수행자는 일어나고 사라짐이 나이고, 걸음을 내딛는 것이 나이고, 내가 듣고, 먹고, 운동하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가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그의 수행이 점차 성숙되어 갈 때, 그는 자아란 존재하지 않고 단지 마음과 물질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행자가 구분할 수 있는 첫 번째 것은 왼발을 디딜 때 걸음을 놓는 것은 육체적 행위(루빠)이고, 걸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나마)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수행자가 불교 용어에 정통하지 않다면 마음과 물질을 알지 못하고 그의 경험에 의해 걸음을 딛는 것이 육체적 동작이며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이란 두 개의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배의 일어남은 육체적이고 그 운동의 알아차림은 정신적이며 배의 사라짐은 육제척이지만 그것의 알아차림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일어나는 동작이 일어나는 까닭은 사람이 숨을 들이킬 때 배의 가죽을 밀어 올리기 때문인데, 배의 움직임은 물질(루빠)이고, 알아차리는 마음은 나마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상이한 종류의 기능입니다. 배의 움직임은 육체적 현상이며, 알아차리는 마음은 정신적 현상입니다.

 

 소리를 듣는 것을 알아차릴 때, 세 가지 요소, 즉 소리와 소리를 듣는 의식, 그리고 귀가 있어야 합니다. 수행자가 6관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현상들을 관찰하며 명상 수행을 하면서 오직 마음과 물질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때, 그는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사카디티를 모두 제거하기에는 확신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카디티는 수행자가 수다원 도과를 획득할 때만이 완전히 제거됩니다.


 부처님께 다가가서 자기의 의견을 표출한 범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 선정을 수행함으로서 5관으로부터 오는 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생들은 우리처럼 범신이 됩니다. 그들은 가슴이 창에 찔렸을 때 곧바로 창을 빼내고 치료를 받는 사람처럼 행위해야 하거나 또는 머리에 불이나 불을 끄고 곧바로 치료를 받는 사람처럼 행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Kāma ̄raga(업, 탐욕)를 제거하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선정(몰입, absoraption) 수행에 의한 일시적 제거와 아나가미도에 의한 완전한 제거가 그것입니다.

 선정에 의한 제거는 불건전한 행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건전한 공덕이 만료되었을 때 자칫하면 욕계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수다원도에 의한 사카디티의 총체적 제거만이 욕계로 통하는 문을 폐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범신에 대한 자비를 느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진실이 절대적 진리의 선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범신이었지만 아직도 성인 상태를 획득하지 못한 세속인이었던 것입니다. 세속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건전한 행위와 불건전한 행위를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합니다. 건전한 행위가 끝났을 때 그는 4욕계의 세계에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는 오직 수다원 도과에 의한 인성의 믿음을 제거해야만 존재의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는 인성의 믿음을 제거하지 못한 사람은 그가 표현한 것처럼 천상의 존재의 환희를 만끽하고자 기대할 수 없다고 응답하셨습니다. 이러한 인성의 믿음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알아차림(sati)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수행 초기에 수행자가 경험한 첫 번째 통찰의 지혜는 빠리체다 지혜 즉 마음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입니다. 그 후 차례차례 수다원 도과가 실현될 때까지 위빠사나 지혜의 깨달음이 성취됩니다.


 예를 들어 경행을 할 때, 일어나고, 사라짐, 봄, 들음, 왼발, 오른발, 듬, 나아감, 놓음을 알아차림으로서 수행자의 알아차리는 마음은 나마(마음)이고, 몸의 육체적 동작은 루빠(물질)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발견은 3가지 종류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⑴책으로부터 얻은 개념적인 지식

⑵상식으로부터 얻은 지식

⑶자신의 경험에 의한 실제적인 지혜


 첫 번째, 책으로부터 얻은 지식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그 지식이란 상세히 하면 28개의 물질, 89개의 마음, 그리고 52개의 정신적 요소가 있다는 것 등의 지식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것입니다. 상식으로 얻은 지식에 의하면 마음과 물질이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의식을 갖고 있지 않는 나무, 숲, 산을 포함하는 모든 것들은 물질입니다. 그들을 아는 의식은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그릇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유식한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이지 그 자신 스스로 깨달은 것을 말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의 수행자들은 왼걸음, 오른걸음, 좌선시 일어남, 사라짐을 알아차림 하면서 알아차리는 동안 그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 마음과 물질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알아차리는 순간에 한 짝의 아는 의식(마음)과 육체적 현상을 알게 됩니다. 6관( 안 이 비 설 신 의)에서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감각과 일어남(현상)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한 쌍의 마음과 물질이 분명하게 발견됩니다.


 개인적 발전에 따라 수행자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할 때 더 많은 것을 파악합니다. 그는 자아나 아상, 인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대적 진리를 받아들이고, 무상과 고통(불만족), 마음과 물질의 무아적 본성을 깨닫고 자아의 믿음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제거합니다. 자아의 믿음을 제거함으로서 그는 자유롭게 되고 명상에서 진보를 이룰 때 단계적으로 육체적 정신적 현상의 소멸에 도달하고 수다원(흐름을 이긴 자)과를 성취합니다.


 모든 수행자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진지하게 수행해서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고통으로부터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해탈 즉 열반을 성취하시길!


착하도다! 착하도다! 착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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