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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있는 자는 와서 보라

DHAMMA DISCOURSES...4

by 산드륵 2009.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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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6가지 감각기관으로부터 생기는 모든 현상에 대한 관찰



 오늘 법문의 주제는 6관으로부터 생기는 모든 현상에 대한 관찰(명상)입니다. 위빠사나 명상에 몰입하고 있을 때는 감각기관과 6관에서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사태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6관이란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마음을 말합니다.


 좌선에 열중하고 있을 때 알아차림의 일차적인 주요한 대상은 아랫배의 ‘일어남’과 ‘사라짐’, ‘앉음’과 ‘닿는 점’ 등입니다. ‘닿는 점’을 알아차릴 때 수행자는 ‘닿는 점’을 3개, 5개에서 10개까지 늘려야 하고, 망상을 제한하기 위해 ‘닿는 점’을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하게 됩니다.

 또한 수행자는 주요 대상 외에 6관으로 들어오는 다른 모든 현상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리는데만 열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수행은 사람이 집에 머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집에 머물 때 사람은 편안합니다. 수업을 받아야 할 때는 학교에 가지만, 수업이 끝난 후에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먹을 것을 사러 시장에 가야 할 때도 쇼핑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직장에 일하러 간 사람도 업무 후에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처럼 일어남과 사라짐은 마치 그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머무는 것과 같습니다. 복부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아차릴 때 어떤 소리를 듣게 되면 일어남과 사라짐의 알아차림을 멈추고 ‘들음, 들음’이라고 소리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소리가 사라지면, 다시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돌아갑니다. 어떤 모습이 떠오를 때는 눈을 감고 있지만 ‘봄, 봄’이라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면 다시 일어남, 사라짐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모습이  사라지지 않으면 ‘봄’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말고 그것을 무시한 후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되돌아갑니다. 어떤 냄새가 나면 좋건 나쁘건 간에 알아차린 후 다시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되돌아갑니다. 혀에 어떤 맛이 느껴지면 달거나 짜거나 간에 알아차린 후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되돌아갑니다. 망상이 들어오면 '망상, 망상' 또는 '생각, 생각' 하고 알아차린 후,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되돌아갑니다. 몸에 통증이나 열 또는 차가움이 있으면 그것들을 '통증, 열, 차가움'이라고 알아차린 후 주요 대상으로 되돌아갑니다. 통증이 계속 되면 자세를 바꿀 수 있지만 그것도 단계적으로 찬찬히 바꾸어 가며 동시에 그 바꾸는 과정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먼저 바꾸려고 하는 의도를 알아차리고 ‘바꿈, 바꿈’ '눈을 뜸', '손들의 동작', '자세를 바꿈', '허리를 곧게 세움', '손을 다시 놓음', '눈을 감음' 등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배의 일어남과 사라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이 명상의 일차적인 대상임을 확실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수행자는 모습이나 소리, 냄새, 맛, 촉감, 마음의 대상 역시 알아차려야 합니다. 수행자들은 왜 6관의 모든 현상을 알아차려야 하는가라고 그 이유를 물을지도 모릅니다. 관찰의 목적은 탐진치 등이 6관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명상은 탐, 진, 치(욕심, 성냄, 어리석음)를 그 자체로부터 제거하는 것입니다.

 

 대념처경에는 욕심과 화냄이 자칫하면 5온의 집착을 공격할 수 있음으로 그것을 관조함으로서 순간순간 제거되고 해소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상에 대한 관찰은 욕심과 화냄을 방지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탐진치는 오로지 6관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빨리어로 그것은 문을 의미합니다. 문이 집으로 들어가는 곳인 것처럼 탐진치 또한 6관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문이 닫혀 있지 않으면 특히 밤에는 도둑이나 강도, 곤충, 개, 뱀들이 집으로 들어옵니다. 그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집의 문은 빗장으로 닫혀져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수행자들 또한 욕심과 분노 등을 방지하기 위해 6관을 단속해야만 합니다. 단속한다라고 하는 의미는 6관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소리가 들리면, '들음, 들음'이라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게 알아차림으로서 욕심과 분노가 귀를 통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알아차림을 무시하면 즐거운 소리로 인해 집착이 생기고 그것이 탐욕을 일으킬 것입니다. 또한 소리가 유쾌하지 않으면 분노를 일으킬 것입니다.

 욕심과 분노는 불건전한 행위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불건전한 행위는 모두 업을 낳는(kamic) 의지이며, 그것과 관계를 맺음으로서 탐진치가 동반되는 마음과 마음의 부수 현상입니다.

 또한 어떤 것을 볼 때는 ‘봄, 봄’이라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름다운 모습은 탐욕을, 추한 모습은 분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코의 감각기관도 같습니다. 냄새를 알아차리지 않으면 좋은 냄새는 탐욕을, 악취는 분노를 야기할 것입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맛을 알아차리지 않으면 좋은 맛은 탐욕을, 나쁜 맛은 분노를 일으킬 것입니다. 탐욕과 분노는 불건전한 행위를 야기하고, 그것은 언어적, 육체적인 불건전한 행위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란 속담처럼 모든 현상은 탐욕과 분노의 형성을 예방하기 위해 관찰되어야 합니다. 볼 때는 ‘봄, 봄’ 하고 시각적 대상을 알아차린다면 좋고 나쁨을 감상할 시간이 없고, 단지 시각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은 시각적 대상에 집착하게 되고 나쁜 시각 대상에는 분노가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보는 순간에 알아차리게 되는 시각 대상은 단지 시각 대상으로 머물 뿐, 감각이나 집착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소리를 듣는 순간에 알아차리게 되면, 그것은 단지 소리의 대상으로서 머물게 됩니다. 분노나 탐욕을 일으킬 시간이 없습니다. 감각이나 집착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냄새도 마찬가지입니다. 냄새가 있으면 '냄새, 냄새'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할 시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먹을 때도 먹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므로서 욕심과 분노가 방지될 것입니다. 촉감이나 촉각의 대상 또한 경험될 때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것을 알아차릴 때, 좋고 나쁜 감정이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냄새나 그 대상이 발생할 때 그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탐욕이나 분노를 일으킴이 없이 있는 그대로 머물 것입니다. 마음의 대상이나 의식 또한 그 현상이 일어날 때 '앎, 앎'이라고 알아차리게 된다면 탐진치를 일으키는 분석적 과정이 방지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은 6개의 감각기관에 접촉되는 모든 현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수행자들은 배의 일어나고 사라짐만을 알아차릴 수 있음에 흡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6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의 관찰은 포틸라의 전례라고 불립니다.

 부처님 시대에 경전을 가르치는 포탈라라는 이름의 매우 유식한 주지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그 당시의 18개 다른 종파에서 온 500명의 승단을 가르쳤고, 그의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부처님께 존경을 표하기 위해 수도원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리 와라! 쓸모없는 포틸라!”라고 하며 그를 맞이하셨습니다.

 

 “절하거라! 쓸모없는 포틸라, 앉거라! 쓸모없는 포틸라, 가거라! 쓸모없는 포틸라!"


 포틸라 대사는 자기는 18개의 종파의 승가에게 불경을 성공적으로 가르치고 있는데도 전지한 부처님께서 왜 자기를 쓸모없는 포틸라라고 불렀는지 돌이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이 승가를 가르치는 일에만 종사했지 실제적인 명상 수행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후 그는 자신의 결점을 고치기로 결정하고 승단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아라한을 획득하리라는 확고한 결단을 내리고 수행을 할 수 있는 명상 센터를 향해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옳은 결정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경전을 배우기를 바란다면, 스승들과 책, 교습 설비 등이 있는 파리야티 센터로 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어떤 이가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고 싶다면, 명상을 위한 모든 시설과 지도를 위한 좋은 명상 스승, 숙박 시설, 도반이 있는 명상 센터로 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포틸라 대사는 유명한 파리파티 센터로 갔는데 그곳의 주지 스님과 다른 스님들 그리고 사미들은 이미 아라한의 단계를 획득하고 있었습니다. 포틸라 대사가 먼저 가장 연로한 주지 스님께 가서 명상 수행의 지도를 요청했습니다. 유명하고 유식한 포틸라 대사를 보고 나서 주지 스님이 응답하기를 “포틸라 스님, 당신은 온 나라에 많은 제자가 있는 유명하고 유식한 스님입니다. 나는 감히 당신을 학생처럼 가르칠 수 없습니다.”

 

 파리파티 센터 주지 스님께서 포틸라 존자를 물리친 것은 포틸라 존자 스스로가 갖고 있는 자만심을 제거하려는 의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만심은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포틸라 대사는 두 번째 세 번째 선임 스님에게 계속해서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포틸라 존자가 유식하고 유명한 주지이기 때문에 감히 그를 학생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같은 응답을 했습니다. 그는 센터의 모든 선임 스님들에게 거절당하자 마지막으로 매우 젊지만 아라한을 획득한 젊은 사미에게 갔습니다.

 포틸라 존자는 젊은 사미에게 응당 받아야 할 존경을 표시하고 명상의 방법을 문의하고는 그 사미에게 자기를 제자로서 받아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 젊은 사미는 같은 이유로 포틸라 존자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포틸라 대사는 어떤 지시 사항도 글자 그대로 준수할 것을 역설하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말을 시험하고 싶은 젊은 사미는 그에게 연못 하나를 보여주고 그 안으로 들어가라고 요구했습니다. 포틸라 대사는 곧바로 존경심 있게 명령을 준수하면서 연못의 중앙을 향해 걸어 갔습니다. 그가 연못가에서 발을 담글 때 그의 가사가 무릎 높이까지 젖었지만 그는 깊은 곳을 향해 계속 나아갔습니다.

 유명한 주지 스님임에도 모든 것을 따르려는 마음을 본 젊은 사미는 연못으로부터 그를 다시 불러 들여서 제자로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포틸라 대사에게 6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알아차리는 중요성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그에게 6개의 구멍이 있는 흙무더기에 사는 이구아나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물었습니다. 포틸라 대사는 한 구멍만 열린 채 놔두고 나머지 5개 구멍을 모두 막은 뒤, 이구아나가 남은 한 개의 열린 구멍으로부터 나올 때 잡을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러자 사미는 몸의 5가지 육체적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현상도 마음에 의해서 관찰되어야 한다고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이런 방식에 의해서 마음의 정화를 점차 발전시키면 수행자는 궁극적 목적인 도과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포틸라 대사는 가르침을 이해하고 6개의 감각기관 가운데 마음의 문만을 열어놓고 나머지 5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이런 정확한 명상 수행에 의해서 포틸라 대사는 때가 되자 아라한이라는 소중한 목표를 획득했습니다.


 우리 수행자들이 6관(안이비설신의)의 대상을 정확한 방식으로 관찰함으로서 포틸라 대사의 예를 따르고 도과의 획득을 위해 노력하기를! 여기에 지시된 대로 강도 깊게 수행해서 가장 손쉬운 방식으로 소중한 목표인 열반을 빨리 실현할 수 있기를!


착하도다! 착하도다! 착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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