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큰사슴이오름

by 산드륵 2009. 10. 18.
728x90

 

 표선면 가시리 큰사슴이오름

 

오름으로 가는 길은 이미 가을이었다.

 

안심이 된다.

  

가을이라는 것이.

 

다시 물매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큰사슴이오름의 둥그런 굼부리

산색도 가을이다.

 

가을이 필요하다.

 

 '전도'된 '망상'으로 일생을 산다는 것은 '공포'이기에 가을이 필요하다.

 

가을과의 눈맞춤이 필요하다.

 

큰사슴이오름에 새로 놓인 길

 

새로 난 길들의 공통점은

그저 정해진 길로만 오르도록 주입한다.

 

돌아볼 틈을 주지 않고 오르면 어느새 정상.

잡목에 가리워 기대했던 굼부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이쯤에서

남은 햇살과 노는 수밖에... 

 

건너편엔 따라비오름

굼부리를 따라걷는 이가 또 있나 살펴보지만

곧 어둑해질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듯하다.

 

바로 아래는 정석비행장과 제동목장

 

임진왜란으로 전마가 부족해지자

남원읍 의귀리 사람, 김만일(1550-1632)이 1600년 (선조 33년)과 1620년에 각각 전마 500필을 국가에 헌납하였고

이어서 그의 아들 김대길도 200필을 헌마하자

조정에서는 그 공을 인정하여

김만일의 아들인 김대길(金大吉)을 산마감목관으로 임명한 후 산마장을 관리시켰으며,

이 감목관을 6년마다 김씨 가문의 후손들에게 세습하게 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김만일이 헌마한 말을 사육시키기 위해

제주목과 정의현의 경계 일대에 1620년에 동·서별목장(別牧場)을 설치하였는데

1658년 제주목사 이회(李檜)의 건의로 동·서별목장이 산마장으로 개칭됨으로써

제주 동부 산간지역에 산마장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인 영정조대(1724-1800) 녹산장, 상장, 침장으로 개편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그 녹산장 일대가 된다.

 

또한 이곳은

일본군 제58군에 의해 비밀 비행장이 들어서려던 곳

 

1945년 6월14일 무렵 일본군 기밀작전일지에 나타난 기록에 의하면

일본군은 독립혼성제108여단 진지 내에 교래리 비밀 비행장 건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1백m×1천m, 50m×9백m 활주로 2개

비행기 격납동실로, 중급연습기 12기분과 비밀위치 30기분, 2백명 수용 규모의 병사숙소 등을

45년 6월말까지 완성할 계획이었다.

 

 

당시 제주에는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제주동비행장(진드르비행장), 제주서비행장(정뜨르비행장) 등이 있었는데

일본군 지휘부는 제주동비행장의 일부 공사를 일시 중지시키면서

이곳 비밀비행장 건설에 나선 것이다.

일본 본토 수호를 위한 격전지로

일제는 1945년 6월부터 이 일대에서 육군 비밀 비행장 건설에 나섰는데

바로 이곳 큰사슴이오름은 비밀 비행장을 위한 요새로 구축되었다.

그곳에 지금은 대한항공 정석 비행장과 제동목장이 들어서 있다.

제주도민의 목숨을 담보로 일제가 마련한 기반 위에서

박정희대통령의 후원을 입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들의 꿈은 이루어진 것인가.

큰사슴이오름 안에는

일제가 구축한 갱도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데

새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서는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다.

 

알알이 몇 개의 울음과 몇 개의 회오리를 간직한 채 푸른 빛을 걷어낸 가을

 

손대고 싶었지만 참았다.

산 아래는 인간의 음식이 넘쳐나고 있는데 이것마저 축낼 필요는 없다싶어서.

  

저마다 피는 법도 갖가지 

 

저마다 빛깔도 갖가지

 

이 꽃의 이름은 '수보리가 사랑한 꽃' 

 

이 꽃의 이름은 **이 마음에 둔 꽃'

 

이 꽃의 이름은 '꽃향유' 

 

 

그렇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을은 깊어간다.

 

가을

그 가을의 오후를

산에 두고 내려왔다.

 

산의 저녁 햇살은

슬픔을 아는 이의 손길처럼

아프지 않게 살며시 내려

두고온 생각 하나 해탈케 하였으리라 믿는다.

 

 

  
사랑한다.더 사랑한다/라이어 밴드

'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랑쉬 오름  (0) 2010.01.03
서귀포 새섬 새연교  (0) 2009.11.12
돌미오름  (0) 2009.10.10
당오름에서 신심명을 새기다  (0) 2009.09.24
너울  (0) 2009.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