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이곳을 뒤돌아 나설 때
홀로 새겼던 그날의 약속대로
살다가 살다가 다시 찾았다.
태백산 부석사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당시
당나라 고종의 신라 침공 사실을 접하고는 귀국하여 이를 알리고
국난에 대비하여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자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창건한 사찰
부석사 입구의 당간 지주
처음 이 사찰을 일으킨 초조 의상 대사에 의해
화엄종의 본찰로 우뚝 선 676년 이래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화엄의 깃발을 굳굳히 휘날리던 곳.
의상대사는 부석사에 자리잡은 뒤 입적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법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왕문
전각 옆으로 난 사잇길로 의상을 따라간다.
의상이 걸었던 부석사의 초기 모습은
그 사잇길에서 맴도는 겨울 바람처럼 직지直指 하였을 것이다.
부석사의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옆으로 앉아있는 범종루
소백산맥을 향하여 봉황이 날아가듯 앉아 있는 부석사는
이 범종루로 인하여 가볍게 차고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팔작지붕 한 쪽이 정면을 향하고
맞배지붕이 뒤쪽을 향하하고 있다.
비상하는 봉황의 꿈을 실현해 놓은 것일까.
한겨울 추위에도 목어는 눈을 뜨고 얼어버린 소리를 듣고 있다.
범종각 앞의 쌍탑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다는 동탑과 서탑이다.
서탑에는 익산 왕궁리 5층탑에서 가져온 석존사리 5과가 분안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원래 이 쌍탑은
부석사 동쪽 일명사터에 있던 것을
1966년 경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이라 한다.
탑은 지석대 위에 상·하층 기단을 쌓고 우주와 탱주를 각각 새겨 격식을 갖추고 있다.
부석사를 품에 안은 태백산은
신라 오악 가운데 중사를 지내던 곳으로 흔히 북악(北岳)이라 불렀기 때문에
의상의 법손들을 북악파라 부르기도 하였다.
추위 때문인지
겨울꽃을 닮은 아련한 아름다움 때문인지 코끝이 아려온다.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의 안양루
이곳 정면의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지만
올라가서 뒤돌아보면 안양루라 되어 있다.
극락이란 뜻의 안양문을 지나면
바로 '무량수'의 붓다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문고리를 잡는 그 찰나, 혹은 찰나도 없이 그대로 비로자나의 세계!
그대 쉬어갈 붓다의 누각!
안양루와 무량수전 사이의 석등과 배례석
마음의 등을 켜고
마음의 배례를 올린다.
배례석의 연화문
석등 화사벽 사방에는 보살상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중 북동 방향의 보살상이다.
이들 보살들은 모두 원형의 두광이 있고
삼면관을 머리에 쓰고 연화대에 서 있는데
목에는 삼도가 분명하며
연꽃과 보주를 어깨와 가슴에 들고 서 있다.
무량수전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봉안하고 있다.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 무량수.
기도 중인 분들이 있어 함께 예불을 보았다.
사진은 접어 버렸다.
다시 찾아올 핑계를 이렇게 만들어둔다.
무량수전 서쪽의 부석
부석사라는 절 이름은
가람이 들어설 터에 잡귀들이 패악을 부리며 방해하자,
대사를 흠모하다가 용으로 변한 선묘가
다시 커다란 돌로 화하여 이들을 물리쳤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 커다란 바위가 바로 선묘의 화신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 선묘각
의상 대사를 연모했던 당나라 처녀 선묘의 애틋한 마음을 기려놓은 곳이다.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 규모의 맞배집으로
가구 방식이나 부재를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최근세의 건물로 보고 있다.
선묘
1975년에 그린 선묘의 영정이다.
무량수전 동쪽의 부석사 삼층석탑
부석사 창건 당시 조성된 것으로 높이가 5.26m, 기단폭이 3.56m 이다.
원래 탑은 법당 앞 쪽에 세우는데
이 탑은 무량수전의 동쪽에 서 있어서 많은 궁금증을 낳고 있다.
동쪽을 향해 안치된 무량수전의 아미타불 방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위치에서 보면 무량수전의 아미타불과 서로 마주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석탑 아래로
소백산의 여러 봉우리와 부석사의 전경이 한 눈에 담긴다.
부석사 삼층석탑을 지나 산중턱으로 올라가면
소박한 느낌의 국보 19호 조사당이 나온다.
1916년의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장여 위의 묵서에 의하면
조사당은 고려 우왕 3년(1377)에 원응 국사가 재건한 것이다.
조선 성종 21년(1490)에 중수하고 성종 24년(1493)에 단청하였으며 선조 6년(1573)에는 서까래를 수리하였다.
조사당 앞에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선비화가 있어 이채를 띤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선비화는 의상대사가 중생을 위해 항상 짚고 다니던 지팡이로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는데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도 푸르게 자라났다고 한다.
퇴계 이황이 이를 보고 지은 시도 전하는데 학명은 골담초라 불린다.
조사당에서 좀더 산으로 들어가면
자인당의 삼존불을 만날 수 있다.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모시고 좌우에 비로자나불(보물 제220호)을 봉안하였는데
사진은 왼쪽에 봉안된 비로자나불.
오른쪽에 봉안된 비로자나불
이 두 불상은 부석사 동쪽의 폐사지에서 옮겨 온 것이다.
세부 조각만 약간 다를 뿐 형태와 조각 양식이 거의 동일하여
9세기 후기 한 사람이 조각한 작품으로 보고 있다.
비로자나불 가운데 봉안된 석가모니불
부석사에서
최순우 선생처럼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차가운 겨울 바람 속에서
얼어버린 생각을 떨쳐버리니 겨울나무가 그렇듯 개운했다.
이제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도 없었던 그날의 추위가 오돌오돌 풀리기에
의상대사의 법성도를 꺼내어 본다.
法性圓融無二相 : 법과 성품은 원융하여 두가지 모양이 없나니
諸法不動本來寂 : 모든 법이 움직임이 없어 본래부터 고요하다
無名無相絶一切 : 이름없고 모양도 없어서 온갖 경계가 끊겼으니
證智所知非餘境 : 깨달은 지혜로만 알 뿐 다른 경계 아니로다
眞性甚深極微妙 : 참된 성품 깊고 깊어 지극히 미묘하나
不守自性隨緣成 : 자기 성품 지키잖고 인연따라 이루더라
一中一切多中一 : 하나 중에 일체있고 일체 중에 하나있으니
一卽一切多卽一 :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
一微塵中含十方 : 한 티끌 그 가운데 시방세계 머금었고
一切塵中亦如是 : 일체의 티끌 속도 또한 다시 그러해라
無量遠劫卽一念 : 끝이 없는 무량겁이 곧 일념이요
一念卽是無量劫 : 일념이 곧 끝이 없는 겁이어라
九世十世互相卽 : 구세 십세가 서로서로 섞였으되
仍不雜亂隔別成 : 잡란없이 따로따로 이뤘어라
初發心時便正覺 : 처음 발심 하온 때가 정각을 이룬 때요
生死涅槃相共和 : 생사와 열반이 서로 서로 함께 했고
理事冥然無分別 : 이와 사가 그윽히 조화하여 분별할 것 없으니
十佛普賢大人境 : 열 부처님 보현보살 큰 사람의 경계더라
能仁海印三昧中 : 부처님의 해인 삼매 그 가운데
繁出如意不思義 : 불가사의 무진법문 마음대로 드러내며
雨寶益生滿虛空 : 보배의 비로 생명을 이롭게 한 일 허공에 가득 차니
衆生隨器得利益 : 중생들이 그릇따라 갖은 이익 얻음이라
是故行者還本際 : 이 까닭에 수행자들은 마음자리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파息妄想必不得 : 망상을 쉬지 않곤 얻을 수 없네
無緣善巧着如意 : 인연 짓지 않는 좋은 방편으로 마음대로 잡아쓰니
歸家隨分得資糧 : 마음자리에 돌아가매 분수따라 양식 얻네
以陀羅尼無盡寶 : 이 다라니 무진법문 끝이 없는 보배로써
莊嚴法界實寶殿 : 온 법계를 장엄하여 보배궁전 이루고서
窮坐實際中道床 : 영원토록 법의 중도 자리에 편히 앉아
舊來不動名爲佛 : 억만겁에 부동함을 이름하여 부처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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