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지이자 친구인 화갑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과 마음이 움츠려드는 한 겨울이네만,
이렇게 내 마음이 추운 겨울은 처음이네.
얼마 전 자네가 우리와는 다른 길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어디선가 들은 어느 유명 가수의 노랫말이 떠올랐네.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그 모습은 어디 갔나 그리운 친구여
옛일 생각이 날 때 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 까 조용히 눈을 감네."
친구 화갑이,
우리는 그 동안의 세월을 정말 꿈인 듯 생시인 듯,
죽은 듯 사는 듯, 먹는 듯 마는 듯 그렇게 함께 살아왔네.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견뎌 내기 어려운 온갖 고통을 이겨내고
함께 견뎌 오지 않았는가?
그 추억이 이렇게 생생한데
도대체 자네는 나를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자네와의 옛일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이젠 정녕 꿈속에서만 만나보아야 하는가?
우린
1965년 박정희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동교동에 들어와 대통령께서 돌아가실 때 까지 45년을 한 솥밥을 먹어왔네.
박정희 전두환 정권 하에서 대통령님에 대한 온갖 고문과 연금, 납치, 투옥과 감시,
용공조작에 맞서 함께 온 몸으로 싸워왔네.
친구, 5·18 당시를 기억하는가?
5·18이 발발하고 우리는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가
두 달 동안 잡혀 있었네.
자네는 내 옆방에서 저러다 옥두가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염려했었지.
'김대중은 빨갱이다' 라고만 써주면
돈과 권력을 보장하겠다던 회유도 거부하고
우린 참 많이도 맞고 고문당했네.
그 후유증으로 자네는 지금도 허리가 아프고
나도 얼마 전에 다리 수술까지 했네.
지금도 그 때의 고통을 잊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을 지켜낸 것을 평생의 자부심으로 삼지 않았는가?
대전교도소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지.
자네와 내가 내란음모사건으로 수감되어 있을 때네.
꽁보리밥에 돼지고기 한 점 씩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식사 기도를 했지.
그런데 기도를 하고 나서 보니까
자네 앞에 있던 밥과 고기가 감쪽같이 없어졌었네.
그래서 내가 '자네는 기도하는 중에 다 먹어 버렸는가?' 하고 물었었지.
그 때 자네는 웃으면서 등 뒤에 감춰놓았던 밥과 고기를 내밀면서
'자네가 기도하는 중에 내 것 까지 싹 먹어 버릴까봐 감춰놓았지' 라고 해서
모두가 한 바탕 웃었었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가 옛날 얘기를 할 때면
늘 빠지지 않는 추억거리 아니었던가.
자네와 나는 그렇게 살아왔네.
꽁보리밥과 고기뿐만 아니라 피와 눈물을 함께 나누면서
모진 고난의 세월을 이겨오지 않았는가?
그런 자네가 왜 이번에는
내 눈에서 또 피눈물을 나오게 하는가?
관포지교(管鮑之交)에 비기지는 못할 지라도
우리는 지난 50여년을 친구이자 민주화 운동 동지로
평생을 같이 해 오지 않았는가?
살아생전 대통령님 말씀대로
우리가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같이 해왔네.
아무런 꿈과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조차도 우리는
대통령님을 모실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행복해 했네.
집 살림은 모두 안사람들이 떠맡았고,
우리는 버스 토큰이 없어서 걸어 다니곤 했었지.
그 땐 국회의원은 꿈도 꾸지 못했었네.
대통령 돌아가신 뒤에도
노제를 치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현충원을 찾아 참배하지 않았던가?
당에 대해서 서운한 점이 많은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네만,
그렇다고
자네가 평생 쌓아 온 모든 것을 저버리고 그렇게 갈 수가 있는가?
자네는 민주당 대표까지 하지 않았는가?
한 때 '리틀 DJ'로 까지 불리던 자네가 이제 와서 이럴 수가 있는가?
마지막 연설이 되었던 2009년 6·15 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
민주주의의 역행, 중산층과 서민 경제 파탄, 남북관계 실패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질타하던 대통령의 모습을 잊었는가?
민주당을 중심으로 뭉쳐 행동하는 양심으로 정권교체를 이루라는
대통령님의 유언도 벌써 잊었단 말인가?
현충원에 계신 대통령께서 얼마나 통곡하시겠는가?
구순을 넘기신 사모님은 또 얼마나 기운이 빠지시겠는가?
광주 5·18 묘역의 민주영령들은 또 얼마나 통탄하겠는가?
동고동락했던 민주화 동지들의 가슴은 또 얼마나 미어지겠는가?
며칠 전 대구에서 만난 한 노(老) 선배는
1971년부터 이 황무지 같은 대구에서
지금까지 야당 생활하면서도 의리를 지켜왔다면서
'한화갑이 박근혜 한테 간다니 정말 가슴이 아프다'는 말씀을 듣고
얼마나 착잡했는지 모르네.
내 친구 화갑이,
칠십을 넘긴 우리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자네가 인생 황혼기에 무엇을 더 이루기를 바라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평생 쌓아온 명예보다 더 소중하겠는가?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자네가 동교동을 버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박근혜 후보에게 갔다는 사실이 조금도 믿기질 않네.
자네는 얼마 전 나에게
하늘이 두 쪽 나도 박근혜 후보에게는 안가겠다고 공언하지 않았는가?
피멍이 지도록 생살을 꼬집어도 믿기 어렵네.
몸과 마음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려 차마 생각조차 하기 싫네.
밤잠을 설쳐 벌겋게 충혈이 된 아침에도
자네가 동교동을 떠나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네!
친구, 이러면 안 되지 않는가?
나중에 우리가 저 세상에서 무슨 낯으로 대통령님을 뵙겠는가?
자네 친구도 동지도 모두 여기에 있네.
그 쪽에는 자네의 친구도 동지도 아무도 없는 데 왜 그리 갔는가?
그렇게 목숨을 걸고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소중하게 지켜왔던
우리의 명예와 자존심이 기껏 박근혜 후보한테 가기 위한 것에 불과했단 말인가?
정녕 발길을 돌릴 수 없다면,
최소한
언제 어디서든 부디 더 이상 우리 대통령님을 거론하지는 말아 주게.
그게 대통령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니겠는가?
권노갑 형님과 나는 죽어서도
대통령님 곁에 가서 영원토록 모시겠네.
안타깝게도 우리 곁에 자네 자리가 이제 없을 것 같아
허전하고 슬프기만 하네.
부디,
우리가 함께 살아 온 고난의 세월,
그러나 아름답고 소중했던 시간들을
다시 한 번 깊이 반추해 주길 바라네. 잘 있게......
2012. 12. 5
자네의 오랜 벗이자 동지인 김옥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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