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일 오후
경남 남해의 호구산 용문사를 찾았다.
3대 지장대도량으로 불리는 용문사
비가 오려는 듯 하늘이 낮은 날을 택해
이곳을 찾았던 시인의 감상이 길손에게는 낯설다.
오늘의 하늘은 맑고 청아한데 혹독한 한파가 손끝을 파고들고 있다.
용문사 천왕각 앞의 낡은 장승 때문에
웬지 민초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천왕각
호법신장들에 의해 짓밟히는 탐관오리들
최고의 남아
풍채는 위풍당당한데
표정은 이웃집 아저씨
천왕각을 건너니 봉서루.
봉황이 안내하는 곳으로 들어서면 용문 .
용문사.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금산에 세웠던 보광사를
조선 현종 원년(1660) 백월대사가 이곳 용소리 호구사에 터를 잡아 사찰을 옮기고
1666년 대웅전을 건립하고 용문사라 칭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곳의 승병들이 큰 활약을 펼쳐
조선 숙종 때 와서는 수국사로 지정되어 왕실의 보호를 받기도 했다.
현재의 용문사 대웅전은 숙종29년(1703) 성화스님께서 중창한 것으로
조선시대 전형적인 법당의 모습을 간직하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8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스님께서 예불을 올리고 있다.
대웅전의 대들보에서 튀어나온 두 마리 용의 역동적 모습이 인상적이다.
화려한 대웅전 내부의 모습
용들이 꿈틀거리는 법당 내부에
아미타불을 주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하고 있다.
1897년 조성된 영산회상탱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와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는데
보물 제 1446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신중탱화
1897년 조성된 작품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53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각마다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눈내린 봉서루만 마주하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용문사를 재건할 당시 출토된 용문사 석불.
용화전에 모셔져 있는 이 보살좌상은
원래는 화강암 석재를 이용하여 조성되었으나 그 위에 백회를 덧칠했다.
한 손에는 보병을 들고
한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연꽃은 사라지고 없다.
보병을 들고 화려한 보관을 쓴 것으로 보아 대세지보살로 보여지며
상체에 비해 하체를 간략하게 표현한 기법 등이 고려시대의 보살상으로 추정된다.
...
사리에 맞게 묻고
조심스럽게 듣고
침착하게 대답하라
더 할 말이 없으면
침묵하기를 배워라
찢어진 법고
뒤집어진 목어
이 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바탕 큰 침묵의 굉음이 강산을 뒤집는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밥을 해 먹기도 했었다는
몸통 3m 길이 6.7m의 구유
큰 밥통 앞에서 잠시 밥 생각을 한다.
내 밥
밥 생각 하지 않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용문사 뒷길을 걸어 백련암으로 향한다.
백련암
용성스님, 석우스님, 성철스님 등이 머물다 가신 곳
선재동자는 아니지만
참 먼 길을 물어물어 여기까지 왔다.
경봉스님이 쓴 것으로 알려진
백련암 편액
보광전
귀한 이들의 발걸음을 좇아온 이곳에서
어찌 가피가 없으리.
유승스님께서 건네준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마음이 녹는다. 온세상이 녹는다.
그런데 아차! 약속을 잊었었구나!
집으로 돌아가거든 나이많은 은사스님을 찾아뵙고 안부나 전해달라던 스님의 부탁.
이제는 여독에서 벗어나 어서 그 약속을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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