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 아침
경남 양산 천선상 원효암으로 간다.
천성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해발 900m 지점.
아침이라 상쾌한 건지
천성산이라 상쾌한 건지 참 맑다.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스님이 창건한 고찰
원효암
산의 기운과 사람의 기운이 모여
맑은 도량을 이루었으니
이곳에 남다른 사연이 없을 수 없다.
양산 천성산(千聖山) 일대 사찰들은 대체로 같은 창건설화를 가지고 있다.
그 까닭은 송(宋)의 찬영(贊寧, 919~1002)이 저술한 『송고승전(宋高僧傳)』의 내용에서 절의 시초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원효스님이 태화사(太和寺)의 대중을 구한 일화와 내원사 창건설화가 전한다.
기장의 담운사(淡雲寺:擲板庵)에 주석하고 있던 원효스님은
어느 날 중국 태화사에 산사태가 나 공부하던 스님들이 매몰될 것을 예견하였다.
그래서 판자를 공중으로 날려 보냈는데, 이 판자는 태화사까지 날아가 마당 위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자 이를 보고 법당 등에서 수도하던 많은 대중들이 놀라 모두 바깥으로 나오게 되었고,
그때 갑자기 산사태가 나서 법당 등의 건물들이 묻혀버렸다.
놀란 대중들이 땅에 떨어진 판자를 보니
거기에는 ‘해동의 원효가 판자를 날려 대중을 구하노라(海東元曉擲板而救衆)’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 후 원효스님의 법력(法力)으로 구출된 천명의 태화사 대중들이 도를 구하여 성사를 찾아왔다.
스님은 그들을 데리고 머물 곳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중방리(지금의 용연리)를 지나게 되었다.
이때 원적산(圓寂山) 산신령이 마중을 나와
"이 산에서 천명이 득도할 것이니 청컨대 이곳으로 들어와 머무소서"라고 하여 스님은 산신령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지금의 산령각 입구까지 스님 일행을 인도한 원적산 산신령은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에 산령각을 짓게 되었는데, 따라서 유독 내원사 산령각만 큰절에서 5리 밖에 떨어져 있게 되었다.
또한 원효스님은 천성산 산신령의 인도대로 이곳에 대둔사(大屯寺)를 창건하고
상ㆍ중ㆍ하 내원암과 아울러 89개의 암자를 창건하여 1천명의 대중이 머물며 수도하게 하였다.
그리고 가끔 대중을 산 정상에 모이게 하여 『화엄경』을 강설하였으므로 지금도 그곳을 화엄벌이라 칭한다.
이후 988명이 이 산에서 득도하였고, 나머지 12인 중 8명은 팔공산(八公山)에서, 4명은 사불산(四佛山)으로 가서 도를 깨달았다하여
이후로 원적산을 천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봄의 기운을 기다리는 천성산
이 산하에
누가 있어 다시 천성을 모이게 할 것인지
그저 바라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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