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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큰바리메와 족은바리메

by 산드륵 201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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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신호등 앞에 선다.

 

 

가을 신호등은 빨간불

 

 

멈추라는 신호

 

 

잠깐 멈춰서라는 신호

 

 

그 손짓에

멈춰서서 마주한다.

 

 

때로 멈추고

때로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큰바리메로 향하는 길

 

 

청보라빛 진범

 

 

바람이 부르면

빛깔이 답한다.

 

 

그 빛 너머 굼부리

 

 

큰 바리메의 굼부리

 

 

깊이 78m, 바닥 둘레 130m, 바깥 둘레 800m

 

 

영근 가을이 터지듯

불길이 치솟았던 큰 바리메의 그 굼부리에도

가을이 왔다.

 

 

노꼬메

 

 

 새별, 이달, 금악으로 이어지는

오름의 선

그 오름의 선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충분히 행복하다.

 

 

흐린 하늘과 흐린 바다

 

 

햇살이

그 흐린 세상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나는

흐린 세상을 거닐며 가을과 마주하고 있다.

 

 

다래오름과 영아리를 마주하고 있다.

 

 

그 길이 하도 고와

안도현 시인의 '가을의 소원'을 엉터리로 외어본다.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그래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그래

 

 

아무 이유없이 걷는 것

-그래

 

 

햇빛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를 맡는 것

-그래

 

 

마른 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그래

 

 

혼자 우는 것

혼자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그래, 가을의 소원이 그렇단 말이지. 아마 그 소원을 외던 안시인은 30대였나보다.

 

 

큰 바리메에서 족은 바리메로 건너왔다.

 

 

큰 바리메의 비고는 약 160m이고

족은 바리메의 비고는 약 130m인데

가을의 깊이는 그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숲에서 홀로 물든 사람주나무

 

 

가을 다음은 이별인데

서둘러 가고 싶은가보다.

 

 

서둘지 않아도

우리 모두 떠날 거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곧 슬픔이겠지.

 

 

안도현 시인은

나이가 더 들면

어떤 가을의 소원을 쓰게 될까.

 

 

적막이 되는 것.

-그래

 

 

궁금한 게 없이 그저 흘러가는 것

-그래

 

 

걷는 것.

-그래

 

 

햇살이 슬어놓은 제 몸의 냄새를 맡는 것

-그래

 

 

마른풀처럼 더이상 애쓰지 않는 것

-그래

 

 

가끔 비가 되는 것

-그래

 

 

눈물 없이 우는 것

-그래

 

 

눈물 없이 울다가 잠자리처럼 잠이 드는 것.

-그래

 

 

록도 그리운 것

-그래, 그럴테지, 그리움마저 버리려 애쓰지 않을테지.

 

 

홀로 문답을 주고 받으며 걷다보니

족은바리메의 정상에 다달았다.

큰바리메와는 달리 풍경을 조망할 곳이 많지는 않다.

 

 

한라....

오름에 오르면 저절로 한라를 찾게 된다.

피식 웃음이 난다.

 

 

부드럽고 거친 길이 연달아 다가오는 족은 바리메 산책길

 

 

아직 한라의 가을이 다는 내려오지 않아서

초록의 숲속에서 사람주나무만 홀로 물들었다.

 

 

파삭

 

 

파삭파삭한 사람주나무의 길을 따라 걷는 것도 좋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갑자기 달라지는 풍경

 

 

족은바리메 산책길은 굼부리 안으로 이어졌다.

 

 

족은바리메의 굼부리 풍경.

 

 

적막하다.

 

 

적막은 평안하다.

 

 

평안한 적막으로 시작한 길은

적막한 평안에서 다시 맞물린다.

 

 

족은바리메에서 발견되는 진지동굴.

전쟁으로 얻으려한 평화와

평화를 얻기 위한 전쟁은

더이상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깊은 암울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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