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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단풍이 좋은 곳 - 붉은오름 가는 길

by 산드륵 2013.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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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메 가는 길, 한대오름 가는 길, 노로오름 가는 길.

그 모든 길을 버리고 

붉은오름 가는 길로 걷는다.

 

 

하나의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할 때면

습관처럼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오래된 그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는 왜 그 시를 습관처럼 되뇌었을까.

 

 

이제 다시 길 위에 섰다.

 

 

그 중에서도

다른 길을 버려서라도 놓칠 수 없는 길.

 

 

붉은오름 가는 길.

 

 

표고 1061m, 비고 130m의 붉은 오름.

 

 

왕복 3시간여의 그 길

 

 

낙엽비의 그 길. 

 

 

그 숲의 풍경.

 

 

그 숲의 모두가

두 손 가득

가을 햇살을 받아내며 

보송하게 제 몸을 말린다.

 

 

보송보송해지면 자유롭게 낙하한다.

 

 

조릿대 위에 제 몸을 뉘인다.

 

 

붉은 계곡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다른 길을 버리고 이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더 좋은 길이 있을지라도

이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이 길은 고운 길이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붉은 곶자왈과 삼형제 오름.

그러나 청아한 하늘은 간 곳 없고 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중국 스모그다.

 

 

한라의 모습마저 지워버린 중국 스모그.

중국 거대 자본이 제주로 향하면서

제주 곶자왈의 숨통이 여기저기서 마구 끊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한라마저 지워버린 중국 스모그에 무력감이 퍼진다.

 

 

굼부리를 따라 걷는다.

 

 

붉은 가을이다.

 

 

가을이다.

 

 

구전에 의하면

이 붉은 오름은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이 아내와 함께 자결한 곳으로

그 피로 흙빛이 붉게 물들었다 하여

붉은오름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제주 백성들에게 김통정 정권은

또 다른 피를 부른 또 하나의 권력.

 

 

피로 흥건한 역사가

어디 제주뿐이겠냐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라의 산천에는 떨어진 낙엽만큼이나 버려진 영혼들이 많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마음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저런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으로 올랐을 이 길

 

 

앞서간 사람의 흔적은 길이 된다.

 

 

산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앞서간 사람의 흔적이 있어서이다.

 

 

이 길을 제대로 걸어야

또다른 누군가가 길을 잃지 않을 것임을 생각하며

붉디붉은 오름에서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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