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가사의佛家思議

태안사

by 산드륵 2014. 8. 6.
728x90

2014년 7월 27일

 

 

전남 곡성의 동리산문 태안사

태안사로 다시 왔다.

 

<동리산태안사사적기>에 의하면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2년 742년 세 명의 신승에 의해 개창되었다고 전한다.

이후 혜철선사가 당나라 서당지장에게서 법을 전수 받고 돌아와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일으켰고

고려시대 광자대사(신라 경문왕 4년 864-고려 혜종 2년 945)가 132칸의 당우를 짓고 크게 중창했다.

 

일주문 근처의 부도전

 

부도전 안쪽에 모셔진 광자대사비.

고려 4대 광종 원년 950년에 세워졌고, 보물 275호로 지정되어 있다.

몸돌은 파괴되어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몸돌은 사라졌지만

네 마리의 용이 감싸고 있는 이수와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펼친 극락조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보물 제 274호로 지정된 광자대사 부도탑.

신라의 석조 부도에서 나타나는 팔각원당형의 부도탑으로

탑신의 각면에는 향로가 새겨졌고 사천왕이 호위하고 있다.

석조 부도이지만

마치 나무를 다루듯

옥개석에는 기와골과 암막새, 숫막새까지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

 

선종의 사찰로서는 처음 생긴 이곳은

원래 대안사라 하였으나

조선조 양녕대군이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법회를 연 이후

태안사라 명명하게 되었다.

고려초까지도 송광사, 화엄사 등 이 지역 사찰을 거느린 대찰이었으나

고려 중기 이후 송광사가 본사로 정해지면서 사세가 축소되었다. 

 

더구나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고

일주문과 능파각만 남아있던 이곳.

이곳에 40여년 장자불와 하시던 청화스님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가셨다.

 

대웅전

 

석가모니불,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삼성각

 

범종각

해회당

 

금고

 

보제루

 

40여년 수행정진.

달이 저절로 와서 비춘다.

  

노년이 멀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나를 다스리고

또한 '나'인 너를 품는다.

 

태안사 삼층 사리탑.

 

신라말기의 양식을 띤 고려 전기의 탑으로 추정되는데

광자대사부도비 옆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원래 탑이 있던 자리에는 주춧돌 등이 남아 있어서

탑을 보호하기 위한 전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기단과 탑신의 일부가 없어진 상태였으나

이곳으로 옮기면서 새롭게 단장하였다.

 

40여년 토굴 생활을 하던 청화스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곳 태안사.

 

맑은 꽃,

비상하게 자기를 다스린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향훈의 큰스님

 

최하림 시인의 표현으로

청화스님은 이미 잘 드러났다.

더이상은 군더더기.

 

 

 


 

'불가사의佛家思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견사  (0) 2014.08.06
용천사  (0) 2014.08.06
도선암  (0) 2014.08.05
일월사  (0) 2014.08.05
탑산사 큰절  (0) 2014.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