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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영월 법흥사

by 산드륵 2014.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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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9일 저녁

 

 

강원도 영월 수주면 법흥리 법흥사

 

신라 구산선문 중 하나인 사자산파(獅子山派)의 중심사찰로서

창건 당시의 사명은 흥녕사(興寧寺)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한 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귀국한 자장율사는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축산 통도사 , 설악산 봉정암에 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곳 흥녕사를 창건하고 사리를 모셨다.

 

이곳이 사자산파의 중심사찰로 성장한 것은

중국 선종 중흥조 마조 도일선사의 법맥을 이은 도윤 철감국사의 제자  징효국사(澄曉國師)에 의해서다.

남전 보원선사는 847년 신라로 돌아가는 도윤선사에게

“우리 종(宗) 법인(法印)이 동국으로 가는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그 도윤 스님이 징효 스님에게 법을 전했고

징효스님은 886년 사자산문을 열었다.

 

방대한 지역에 이르는

이 흥녕사는

신라말에서 고려로 넘어오면서

역사의 정점에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891년(진성여왕 4)에 병화로 회진되는 등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오늘에 이르러

적멸보궁 법흥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만다라의 세계.

이 사바가 그대로 만다라.

그 꿈에 가까웠던 이곳.

 

과거 흥녕선원의 위세는

이곳으로 안내하는 탑들의 위치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으니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에 제1안내탑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에 제2안내탑

그리고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에 제3안내탑이 그것이다.

곳곳에서

이곳을 향한 걸음이 시작된다.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법흥사 적멸보궁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예배하기 위한 공간이다.

적멸보궁 뒤쪽의 사자산 연화봉에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적멸보궁 뒤의 토굴과 부도

 

자장율사가 고행하던 토굴.

자장율사는 이곳에서 가시덤불로 몸을 감싸고

극한의 수행을 이어갔다.

 

지금은 화강암을 쌓아 막아놓았지만

발굴 조사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돌방은 네모난 바닥에 둥근 벽면의

높이 160cm 길이 150cm 너비 190cm 크기였다고 한다.

 

토굴 안에서는

고승의 유골을 모셨던 것으로 보이는

돌널도 발견되었다.

 

징효대사 보인탑비와 부도

 

효공왕이

징효대사라는 시호와 보인이라는 탑명을 내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943년 혜종 1년에 세워졌다.

비의 머릿돌에 고징효대사라는 전서체의 글씨가 세겨져 있다.

 

부도.

탑비와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신각

 

극락보전 등을 비롯하여

최근에 많은 전각들이 복원되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요선정 마애불상에서

이곳 법흥사까지 참배하던

10여년전의 추억이 새롭다.

 

극락보전의 아미타여래.

2014년 6월에 점안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옛 길도 다시 걸으면 새 길이고

새 길도 다시 걸으면 옛 길이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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