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9일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옛길을
다시 걸어보려 했는데
청량산에 새 길이 나 있었다.
산 하나를 넘어 청량사로 가는 '원효구도의 길'
점점 가까워지는 그 길.
구도의 길도
청량사가 점점 가까워지듯
그렇게 가까워지는 것이었다면
원효도 그렇게 온 산하를
짚신이 닳도록 헤매이지는 않았겠지.
가는 곳마다 원효이고 가는 곳마다 의상이니
돌고 돌다가
그들 선지식이 좌복을 펼친 곳은 어디일까.
결국 돌아와 좌선에 든 그 자리에 진리가 있었다는 말은 하지마라.
이미 많이 걸었다.
가파른 청량사 옛길을 피해
'입석'에서 출발하는 완만한 길을 타고 청량산에 오르니
청량사의 후문이 먼저 나타난다.
그 푸르름 여전한 건가.
입석에서 오르는 이들이 많은듯
설선당에도 현판이 놓여있다.
새 현판이 길손을 맞는다.
일소당.
웃으라니 웃는다.
다래헌.
목이 마르다.
연화봉 꽃술 자리에
신라 문무왕 3년 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청량사.
송광사 16국사 중 마지막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고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 (望仙菴) 등 27개소의 암자들이 함께 하면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했던 곳.
연꽃 속에 잠긴
유리보전과 사리탑, 종각
그리고 걷기에 좋은 나무계단
유리보전.
약사여래불이 모셔진 전각이다.
유리보전 현판은 공민왕의 글씨.
경북 안동 등 이 지역은
공민왕이 몽진을 왔던 곳으로
여기저기서 공민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약사여래를 모신 이곳 청량사의 응진전에
노국공주가 모셔진 것만 봐도
공민왕이 이곳에 남다른 아픔을 묻고 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리보전의 약사여래불과
좌우협시한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이곳 청량사의 유리보전 약사여래불은
종이를 녹여만든 지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위에 개금을 한 모습인데
어쩐지 봉정사 극락전의 여래와 인상이 비슷하다.
청량사 사리탑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진다.
다시 맑아진다.
나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다.
어느 길엔들
선지식이 없었을까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식이 걸었던 길을 되짚어 걸으며
그를 상념하는 일은
또다른 길의 즐거움.
앞서 왔던 이들은
청량산의 하늘다리로 올랐고
나는 이곳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다.
쉬 떠나지 못하고
오래 머물러 있다.
정갈한 도량의 모습
늦은 연꽃
풀꽃을 키우는 노란 고무신.
범종각
청정함을 담고 간다.
청정이란 무엇인가.
공
청량한 것이란 무엇인가.
청량산 청량사에서
무엇을 보고 가는가.
바람에겐 소리가 없고
소리에겐 바람이 없는데
바람이 소리를 만난다.
길을 내려왔다.
응진전을 찾아볼 생각이다.
응진전으로 오르는 어풍대에서 만난
청량사의 모습
연꽃의 꽃술 속에 피었음을 알겠다.
어풍대는
중국 고대의 인물인 열어구가
바람을 타고와
이곳에서 보름 동안 놀다갔다고 하여 불려지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치원암터
최치원이 거처했던 암자터라고 되어 있다.
석벽에는
이곳을 찾았던 선현들의 글씨가
빼곡하다.
애썼다.
응진전
원효대사가
수도하던 곳이라 한다.
상사화가 고운 이곳.
노국공주가 모셔져 있다.
꽃으로 피었다면
상사화가 되었을 것만 같다.
응진전에서 내려오다가
또다른 암자를 만났다.
홀로 수행정진하는 이의 기운이
사립문밖으로 흐른다.
방일하지 마라.
그러면 언젠가는 끝이 보이지 않겠는가.
그 끝없다는 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