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에 산수국의 계절이 다시 왔다.
빛깔이 향기처럼 흐르는 무당꽃.
짙푸른
혹은 짙붉은 산수국 무리 속에서
하얀 산수국이 오히려 눈길을 끈다.
저마다의 빛깔로
저마다의 향기를 드러내는 산수국.
모두 달라서 더욱 고운 것은
꽃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인간사와는 많이 다른
산수국의 빛깔을 따라가다보니
6월의 산행이 더욱 한가로웁다.
달콤한 한낮
제주시 아라동 삼의악 둘레길을 찾았다.
삼의악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버리고
숲으로
혹은 계곡으로 따라 들어가는 길이다.
칼다리 폭포.
엉또폭포처럼
비가 많이 내린 뒤에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릴 듯하다.
수심은 알 수 없지만
바위빛을 그대로 머금어
검은 호수를 이루었다.
큰비가 내릴 때면 어떤 장관을 보여줄지 무척 궁금해진다.
칼다리폭포를 지나
노루물과 내창길을 걸어
신령바위에서 고지길로 돌아올 예정이다.
새롭게 단장된 길.
이 삼의악 둘레길에는 길이 너무 많아
길이 길이 아닌게 되어 버린다.
왜 이렇게 길이 많아졌을까 궁금할 정도이다.
산에서만이라도
옛 사람의 길을 따라
새 길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되는 것은
내 속이 좁은 탓일까.
아라동 역사문화탐방로
내창길
노루물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으니
노루들에게는 성지가 되겠다.
하늘도 거울을 보는가.
초록의 잎새도 거울을 보는가.
맑은 물 속 저 세상은 너무 아득하니
오래 들여다보면 돌아설 수 없을 것만 같아
금세 발길을 돌린다.
숲 속의 알 수 없는 구조물.
머지않아 이끼가 덮히겠지.
조릿대길
목마른 계곡
벌들이 목을 축이는데
옆에서 올챙이가 신기한 듯 처다본다.
내창길은
수차례 내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숲길로 들어서기를 반복하며 이어진다.
숲그늘도 깊어
걷기에 편하다.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나무들.
고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초록잎새는 찬란하기만 하다.
걷기에 크게 어렵지 않고
오르내리는 재미도 있어서
이리로 저리로 그 많은 길들이 생겨나게 된 것일까.
숲에는 가막살나무꽃.
산수국 고지를 벗어나서 처음 만나는 꽃이다.
숲길에서 다시 내창길로 내려서니
여기저기 바위에 뿌리를 박고 사는 나무들이 또 보인다.
내가 터질 때 물길에 휩쓸리지도 않았고
가물었을 때 시들지도 않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무의 생명력에 감탄하며 걸음이 느려지는데
초입에서부터 따라온 까마귀가
이제는 아예 대놓고 말을 걸듯
가까이서 깍깎 거린다.
관심을 보여줘야 하나 하는 의심이 들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까마귀가 앉았던 나무 위에서
초록잎 한 장이 살랑거리며 떨어진다.
무슨 신호일까.
신령바위
바위를 향해
두 손 모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여
정성껏 두 손을 모았다.
인연이 있는 이거나 인연이 없는 이거나
메르스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이들이 평안하기를 빌었다.
신령바위에서 돌아오는 길은
고지길을 택했다.
잣성인듯 돌담인듯
제주숲의 풍경이 정겹다.
숲에서 행복했으니
세간에서도 행복하리라 믿는다.
그러기를 바란다.
모두가 평안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