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록도로를 달려
서귀포시 호근동 산 1번지
치유의 숲속의 시오름으로 향한다.
한라산 둘레길에서도 시오름으로 가는 길을 만날 수 있지만
오늘은 산록도로변에 위치한
산책로를 따라들어간다.
서귀포시에서 공사진행중이라는 치유의 숲에 포함된 산책로이다.
치유의 숲 입구로 들어서지 않고
50여미터 떨어진 이 길로 들어선 것은
결과적으로 볼 때
참으로 다행스러운 선택이었다.
입구에서 시오름까지는
넉넉히 두세시간.
그 길에
동백이 함께 한다.
3월의 붉은 동백.
이 숲의 벗.
때가 되면
후두둑
미련없이 떠나고 마는
이 숲의 오래된 벗.
돌담.
이 숲의 또다른 벗.
오래전
다양한 용도로 쌓아올려졌던
이곳의 돌담들은
이제 동백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향기없는
동백의
그 붉고 지극한 향을
두 눈에 담고
천천히 걷는다.
싸스레피나무, 조록나무, 서어나무, 편백나무.
나무의 향기는 없고
숲의 향기만 남았다.
그래서 숲을 치유의 길이라 하는가.
시오름을 품은
깊은 숲.
편백나무
맥문아재비
계곡
궤
그 모든 것을
스쳐보내는
길.
총각화전터.
호근동의 어떤 총각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는 곳이다.
올레.
숲속에 올레가 웬말이겠냐마는
그 호근리 총각이 아니었더라도
누군가가 살았던 집터 입구로 보인다.
숲에 살면서도
올레.
제주민의 DNA.
사람과 사람과의 정다울만큼의 거리.
그것이 올레.
올레로 장사를 하려면
올레가
그 정다움을 회복하는 길이 되어야 하는데
요즘 제주의 길은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올레가 필요없어진 제주에
이제 남은 것은
이 숲
그리고 말테우리들이 걸었던 옛 길.
이곳 갈림길에서
시오름 가는 옛길을 만날 수 있다.
옛길을 버리고
새길로 오른다.
가베또롱 돌담길을 지나야 시오름이다.
가베또롱 돌담길.
가베또롱과 같은 돌담은 이곳뿐만 아니라
시오름으로 오르는 산책길 전체에 흩어져 있다.
상잣성과 화전민들의 집터, 숯가마터 등
다양한 형태의 여러 돌담들이
동백장성을 이루고 있는데
아직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참 다행이다.
길.
길은 곧 차(茶).
홀로 마시는 차처럼
홀로 걷는 맛은 일품이고
둘이 마시는 차처럼
둘이 걷는 맛은 역시 명품이다.
그러나
여럿이 걷는 것은
여럿이 여러번 우려낸 차를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럿 속에서도 홀로 걷는 지혜가
가끔은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좋은 산벗과
어느덧
시오름 정상.
표고 758m.
한라.
하늘이 맑으니
오늘밤은
정녕 은하수를 끌어당기겠다.
한라에서 별빛을 바라보던
옛 일이
꿈인듯 가물거린다.
모든 것이 정말 오래된 일들이 되었다.
시오름 정상에서 묻는다.
다시
이곳에 오를 수 있을까.
시오름 정상에서 대답한다.
다시 올 수 있는 곳은
이제
없을 것 같다.
시오름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
이 길로 내려가면
한라산 둘레길과 만나게 되는데
경사가 상당하다.
지금까지 걸어온
이 길의 그 경사가 어떠했든
아마 지나온 길이란
다시 와도 그리울 것이고
다시 오지 못해도 그리울 것이다.
시오름에서 내려와
한라산 둘레길과 만난 뒤
다시 서귀포 치유의 숲으로 들어섰다.
산도록, 맨도롱, 오고생이 등
치유를 위한 제주어들은 모두 이 길에 동원되었다.
그만큼
모두에게 치유가 간절한 세상.
그러나
진정 치유하고 싶다면
숲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치유의 나무가 되어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숲에서 빠져나오고서야 만나는 안내도.
두세 시간으로
이곳을 모두 돌아본다는 것은
어려울 듯도 싶은데
아무튼
엄부랑한 이곳이
오래도록
오고생이 남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