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그 길의 그 숲의 그 구름들은
나뭇잎처럼 대롱대롱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다.
선운사에서 약 2km정도
진흥굴 장사송을 지나 드디어 도솔암.
기억 속의 도솔암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걸 아쉬워할 내가 아니다.
과거의 마음은 지났고
미래의 마음은 오지 않았으며
현재의 마음은 공(空)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기억도 추억도 인연 따라 흐르고 있을뿐.
도솔암.
백제 위덕왕 24년 577년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할 당시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후기에 이르면서
상도솔암, 하도솔암, 북도솔암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가
근세에 들어 도솔암으로 통칭하게 된 것이다.
상도솔암은 현재의 도솔천 내원궁을
하도솔암은 칠송대 절벽의 마애불이 있는 곳을 지칭하며
북도솔암은 현재의 도솔암을 말한다.
극락보전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극락보전 옆으로는
마애불과 내원궁으로 향하는 길.
아니온 듯
그렇게
다녀가시라는 당부.
그 당부는
하늘옷처럼
이 생을 다녀가는
무거운 발걸음의 모두에게
가볍고 또 자유로운 해방감을 선사한다.
도솔천의 나한전
삼층석탑
숲에서 만난 한떨기 붉은 꽃처럼
허공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도솔천 나한전의 모습이
자꾸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윤장대.
마음이 공함을 깨닫는 것이
참된 참회임을 알고 가는 자리.
그 윤장대를 돌려 도솔천으로 간다.
도솔천 마애불.
고려 중기 이후 조성된 마애불이었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미륵불로 숭배되었다.
미륵을 기다리던 농민들의 꿈은
전라도 고부군 무장현의 손화중이
마애석불의 배꼽에서 비결을 꺼내들고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하기에 이르른다.
오래전부터 이 선운사 인근에서는
검단선사가 조성한 이 마애불 배꼽에 비결이 들어 있다고 전해져왔었는데
심지어 전라감사 이서구가 그 비결을 꺼내보다가
뇌성벽력이 일어 그대로 봉해두기도 했던 것이다.
미륵의 배꼽에 감춰져 있던 그 꿈.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그런 사람사는 세상이
어쩌면 미륵의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도솔천 내원궁.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던 곳으로 알려졌는데
1511년 지은스님이 중창한 이후
순조 17년 1817년까지 중축을 계속하였다.
내원궁으로 가는 길.
구원받지 못한 중생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있다면
스스로 지옥을 떠나지 않으리라 발원했던 지장보살의 거처.
봄에는 솔향기가
여름에는 솔바람이
가을에는 겨울에는 텅비어 더 좋은 곳
지장보살.
고려후기의 불상 중 단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며
보물 280호로도 지정되어 있다.
길에서의 문제는
대부분 짐을 내려놓으면 해결이 된다.
그런데 떄로는
선운사에서 도솔암에서 내원궁까지의 길처럼
꿈을 지고 있어
행복한 길도 있다.
올라갈 때 스치고
내려갈 때 살펴보는 진흥굴.
진흥왕이 수도하던 곳이라 한다.
진흥굴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354호 장사송.
그 위용이
이 길을 오가는
많은 이들의 꿈들을
충분히 지켜봤을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