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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설악산 백담사

by 산드륵 2019.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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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꽃 중에서는 국화

그리고

가을에

길 중에서는 백담사 가는 길



그리고

중들 중에서는 춘성대선사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이었다.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렸다.

춘성스님은 그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걷고 있었다.

경찰이 스님을 제지했다.

총을 들이대며 신원을 물으니 스님이 답했다.

나는 중 대장이다.



내설악 깊은 곳의 백담사.

통이 크다.



인연따라 흐르는 모든 것들을

구태여 품지 못할 일도 없으니

그저 시원하게 한세상 노닌다.



서기 647년 신라 진덕여왕 원년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한계사라 이름하였던 이곳.

1783년에 와서 백담사라 불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설악에서 흘러내린 못이 백 개가 되는 지점이

이곳이었기 때문이라 한다.



금강문 안뜰에

옛 백담사 현판이 보인다.



만해 한용운과 그의 제자 춘성 대선사를 품어

그 기개가 남달랐던 곳.



극락보전 왼쪽 요사채는

12대 대통령 전두환이

위리안치되어 있던 곳이다.

치열한 독립운동가가 탄생하고

기골이 장대한 선객이 머물던 이곳에

생뚱맞게 똥덩어리가 들어앉았어도

백담사니까

그 똥마저 인연으로 맞이하고 흘려보냈다.



극락보전과 삼층탑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불과 좌우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협시하였다.

본존불인 목조아미타불은

보물 제 1182호로 지정되어 있다.



산령각



나한전



평지 사찰의 평온함 위로

자주 찾아오는 물안개가 드리워져

이곳의 풍경은

비처럼

마음으로 젖어든다.



만해 한용운



조그만 서재같은

만해기념관



후광이 없어도

그의 삶은 빛났다.



마저절위(磨杵絶韋)

절구 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고

대나무 책의 가죽 끈이 닳아 떨어지도록 쉬지 말고 노력하라는 뜻이다.

천재 시인이기에

건네주는 그 의미가

더욱 뜻깊고 깊다.



백담사에 왜 왔나.



가을이 왔다고 해서.



그리고

그 한 잎 우주 위에 놓인

봉정암.

그 봉정암으로 가는

가장 험한 길의 시작이 이곳이어서

마저절위(磨杵絶韋)를 채찍으로 받들고

바늘처럼 닳아 버릴 때까지 걷기 위해서

다시 이곳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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