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노리梅

by 산드륵 2023. 3. 1.
728x90

 

꽃은 맑은 날이 좋지만

향은 비오는 날이 더 좋다

 

 

계묘년의 매화가 다 지기 전에

그 향기를 찾아 나선 길

 

 

비에 젖은 향기가 꽃보다 곱다

 

 

매화

 

 

그 누구보다 퇴계가 매화를 사랑하여

『매화시첩』을 남기기도 했지만

누군들 빗속의 매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퇴계 이황이 죽어가면서 한 말은

" 매화에 물을 주거라"

 

 

퇴계가 그토록 매화를 사랑했던 까닭은

단양의 기생 두향 때문이라고 하는데

퇴계와 두향의 이야기는

1970년대 정비석의 신문 연재소설인 『명기열전』에 처음 소개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이

40대의 나이에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두향을 만났으나

9개월여 후에 풍기군수로 이직하면서 퇴계는 두향과 헤어졌고

둘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퇴계는 두향이 정표로 준 매화를 지극하게 사랑했는데

죽음을 앞두고 "매화에 물을 주거라"고 했던 것은

두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훗날 퇴계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두향은 결국 자결하고 말았다고 한다.

 

 

임방(1640-1724)은 두향을 위해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一點孤墳是杜秋

降仙臺下楚江頭

芳魂償得風流價

絶勝眞娘葬虎丘

 

한 점 외로운 무덤 이것이 두향이구나

강선대 아래 강언덕에 있으니

고운 영혼 풍류의 값으로 얻었나

절승에 묻어 주었구나

 

 

노산 이은상도 1966년 강선대를 지나며 시를 남겼다.

 

두항아, 어린 여인아, 박명하다 원망치말라.

네 고향 네 놀던 터에 조용히 묻혔구나.

지난 날 애국투사 못돌아 온 이가 얼만대

강선대 노는 이들 네 무덤 찾아내면

술잔도 기울이고 꽃송이도 바친다기에

오늘은 가을 나그네 시한 수 주고 간다.

 

 

퇴계의 제자인 정구(鄭逑)도 매화를 사랑했다.

그는 경북 성주 회연에 초당을 마련하고 매화 백 그루를 심어 '백매원百梅園'이라 하였다.

 

小小山前小小家

滿園梅菊逐年加

更敎雲水粧如畵

擧世生涯我最奢

 

작은 산 앞에 작은 집

뜨락의 매화와 국화 해마다 늘어나 정원에 가득

구름과 냇물이 마치 그림처럼 둘렀으니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치한 삶이로구나

 

 

『성호사설』에는 이 '백매원百梅園'에 얽힌 또다른 이야기가 전한다.

 

어느날 '백매원百梅園'에 최영경이 찾아왔다.

정구(鄭逑)는 출타하고 없었다.

백매원을 둘러본 그는 도끼를 가져오게 하여 백매원의 백 그루 매화를 모두 찍어버렸다.

이유는 그 매화가 늦게 피었기 때문이었다.

 

 

매화를 사랑하기로는 추사 김정희를 빼놓을 수도 없다.

 

看花要須作畵看

畵可能久花易殘

詩中香是畵中香

休道畵花畵香難

 

꽃을 보고 싶으면 그림으로 그려서 봐야 하네.

그림은 가히 오래 가지만 꽃은 쉽게 시들고 말지.

시 속의 향기는 그림 속의 향기이니

쉿! 꽃은 그릴 수 있으나 향기는 그리기 어렵다네.

 

 

매화를 사랑했던 추사가

제주에 와서 만난 것은 수선화.

『임하필기』에서 이유원은 "제주의 수선화는 추사가 처음 알았다."고도 하였다.

 

 

一點冬心朶朶圓

品於幽澹冷雋邊

梅高猶未離庭砌

淸水眞看解脫仙

 

한 점 겨울 마음인가 꽃송이 둥근데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이 참으로 빼어나네

매화는 고고하나 뜨락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의 참으로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추사는 맑은 물의 해탈신선인 수선화도 사랑하였지만

그의 제자 조희룡은 달랐다.

 

 

조선의 매화하면

단연 추사의 제자인 우봉 조희룡.

 

 

조희룡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는

조선의 매화 중에서 최고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홍매도' 역시 그렇다.

 

 

'백매도' 또한 그렇다.

 

 

매화노인 조희룡은 『석우망년록』을 남기며

매화예찬을 이어갔다.

 

 

매화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상촌 신흠이다.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月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

 

오동은 천년이 지나도 항상 그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고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오네

 

 

매월당 김시습은 또 어떤가

 

大枝小枝雪千堆

溫暖應知次第開

玉骨貞魂雖不語

南條春意取先胚

 

큰 가지 작은 가지에 눈이 천길이나 쌓였건만

따뜻함 알아차려 차례차례 피어나네.

옥골의 곧은 혼은 비록 말이 없어도

남쪽 가지는 봄의 뜻을 따라 꽃망울을 먼저 틔우네

 

 

 

 

겨울이 간다

 

 

매화가 먼저 알아차린다

 

 

그 매화를 어찌 옛사람만 사랑했으랴

 

 

 

 
시인 도종환의 '홍매화'이다.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자락 덮어도

매화 한 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 속 홍매화 한 송이

 

 

굵고 거친 용트림

 

 

성긴 꽃

 

 

소소밀밀疏疏密密의 여백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매향梅香

 

 

하얀 향기

 

 

붉은 향기

 

 

비에 젖은 향기

 

 

마음에 남은 향기

 

 

그리운 향기

 

 

 

 

잊혀진 향기

 

 

붙잡을 수 없는 향기

 

 

그래서 더욱 마음이 쓰이는 향기

 

 

그 향기

 

 

아름다웠다

 

 

그 향기

 

 

고왔다

 

 

3일만 견디고 떠나간대도

매화가 좋다

 

 

일년의 그리움만 채우면

다시 만날 매화

 

 

꽃은 다시 와도

사람은 또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약속을 아니 할 수도 없지

 

 

매화 피는 날

그날을 기다림에

일년 삼백육십오일 후가 벌써 설레인다

 

'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효원  (1) 2023.03.13
추사와 벗들  (0) 2023.03.10
송당 곶자왈  (0) 2023.03.01
소정 변관식 몽유강산  (0) 2023.02.28
정월대보름  (0) 2023.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