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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별오름에 가을이 왔다. 새별의 아름다움이야 어느 계절엔들 덜하랴마는 그래도 제주 오름들의 절정은 이 가을의 바람과 빛을 만나야 더욱 찬란해지는가 싶다.

 

 

새별오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효별악曉別岳', 『탐라지』에는 '효성악曉星岳', 『제주군읍지』에는 '신성악新星岳'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발 519.3m로 서쪽 기슭의 말굽형 분화구와 북쪽 기슭의 작은 분화구가 함께 하는 복합형 화산체로 분류된다

 

 

새별오름 억새길. 새별오름은 동쪽의 완만한 기슭으로 올라야 걷기에도 편하고 서부지역 오름군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데, 오늘 방문해보니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서쪽의 가파른 기슭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곳 새별오름의 지형을 잘 몰라서 서쪽 급경사로 오르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차장 입구 서쪽에 올레길 표시가 되어 있고 들불기념비도 서 있어서 모두가 가파른 서쪽 기슭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관리청에서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오름의 완만한 곡선을 감상하며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구름을 만난 바리메

 

 

찰나의 만남이 깊이 각인된다

 

 

가을은 그렇다

 

 

새별오름 동쪽 기슭

 

 

서부지역 오름군

 

 

바리메

 

 

노루오름

 

 

북돌아진 오름

 

 

천천히 걷다가 뒤돌아본다

가을이 어디까지 왔나

 

 

새별오름 언저리까지 가을이 왔다

 

 

새별오름 정상

 

 

한림에서 금물(금악)오름을 지나 새별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이달오름이 있고 그들 오름이 품은 어름비 들판이 있다. 예전에는 새별오름에서 이달봉까지 길이 연결되어 있어서 어름비로 바로 내려갈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는 이들만 스미듯 그 길을 걷는다.

 

 

1273년 고려 원종 14년 삼별초의 난이 평정된다. 몽골은 ‘탐라국초토사’를 설치하여 제주를 몽골 직할령 하에 둔다. 탐라는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고 목재가 풍부하며, 전술용 말을 육성할 수 있는 방목지가 오름 기슭마다 널려 있어서 몽골의 일본정벌 전진기지로서 최상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몽골은 160마리의 말을 가져와 수산평에 방목했고, 제2차 일본정벌 당시에는 배 3천척 건조 분량의 목재를 탐라에서 보급했다. 이 과정에서 탐라인들의 고충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탐라는 고려국과 몽골에 귀속 환속을 거듭하며 80여 년의 세월을 보냈고, 그 기간 동안 탐라에는 몽골의 목축이 성행하게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몽골이 “탐라를 방성房星 분야로 여겨 목장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방성’이란 ‘말의 수호신’을 뜻하는 별자리이다. 몽골은 방성을 위해 관리자인 ‘하치’와 목축기술자인 ‘목호’를 탐라에 보냈고 1300년 고려 충렬왕 26년에는 ‘아막’이라고 불리는 목마장을 동·서에 조성하였다.

 

그러나 원나라 국운도 기울 때가 되었다. 이를 간파한 고려 공민왕은 1356년 반원정책을 실시한다. 그로 인해 제주는 공민왕의 고려 조정과 원나라 출신 목호세력과의 격전장이 되고 만다. 거기에 원나라가 멸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섰으나 명나라에서도 탐라의 말을 탐내어 수차례 사신을 보내었고, 1374년 공민왕 23년에는 명마 2천 필을 가려 뽑아 보내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탐라의 목호들은 자신들의 황제 쿠빌라이가 풀어놓아 기른 말을 명나라에게 바칠 수 없다며 300필만 조정에 보내었다. 이에 명나라 사신들이 더욱 강력히 2천 필을 요구하자, 공민왕은 마침내 1374년 7월 출정군을 편성하여 제주로 들어온다.

 

고려군은 총사령관 최영을 필두로 정예군 2만5,605명과 전함 314척을 거느리고 명월포로 들어왔다. 제주 목호들은 석질리필사, 초고독불화, 관음보 등을 앞세워 고려군 선발대에 타격을 주었지만, 고려군 전력이 일시에 들어와 목호군을 제압했고 전투는 어름비에서 극한에 달했다. 이곳에서 승기를 잡은 고려군은 목호군을 추격하여 상명리 밝은오름, 금악리 금물오름, 봉성리 새별오름, 예래동, 홍로, 법환포구 그리고 범섬까지 쫓아 목호를 모두 살해하고 전투를 끝냈다.

 

그 과정에서 제주사람들의 희생은 '언지어읍言之於悒'이라, 말하면 목이 메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하담河澹의 기문’이 있다. 그 글에서 제주 사람 하담은 말한다.

 

“우리 민족이 아닌 종족이 섞여 갑인의 변란을 불렀으니, 무기는 바다를 덮고 간과 뇌는 땅을 뒤덮었다.

말하면 목이 메인다. 且雜以非我族類,以致甲寅之變,兵戈蓋海,肝腦塗地,言之於悒。”

 

 

새별오름은 그런 곳이다. 새별오름 목초지에 홀로 남은 소화전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이제는 중지된 들불축제의 현란함을 기억하는가. 아니면 1948년 제주의 4월 3일에 이곳 새별오름에 올랐던 봉화를 기억하는가. 그날 이곳에서 봉화를 올렸던 이들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제폭구민 조국통일" 폭력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고 조국을 통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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