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따라비오름

따라비오름은 표고 342m, 비고 107m, 둘레 2,633m, 면적 448,111m2의 복합형 화산체이다. 3개의 굼부리와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360여개의 제주 오름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탐라순력도』, 『해동지도』 등에는 '다라비악多羅非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주도 지명 가운데 '다랑쉬', '다랑곶' 등의 '다라'와, '어름비', '다라비' 등의 '비' 등과 연계해서 유추해보면 '하늘에 닿을 듯이 높고 너른 곳'을 이른 것이 아니었나 추정해본다. 물론 '지조악地祖岳'이라 하여 '땅할아버지'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제주오름을 표기한 한자어들은 대부분 제주어를 표기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니, 한자어의 뜻에 낚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듯싶다. 그리고 이 참에 '따라비'을 '다라비'로 고쳐 부르는 것은 어떨지 홀로 고민한다.

가을의 엽서

가을의 능선

섬잔대

수척해진 잎사귀 사이로 내민 얼굴은 가을철쭉이다.

병곳, 번널오름

설오름, 가세오름, 토산봉

걸어서 하늘에 닿을 수 있는 곳은 이곳뿐.

하늘에 닿으면 말없이 따뜻한 위안을 전하는 빈 의자

하늘이 내어준 빈 의자에 앉아 바라보면 시야는 확 트인다. 따라비오름에서 갑마장길을 지나 큰사슴이오름까지 갑마장 길이 이어져 있다. 그 길에서는 잣성, 목감막 터, 목감집, 급수통, 목도 등의 유적들도 만날 수 있다. 걸을만한 곳이다.

성불, 비치미 오름

모지오름

모든 것이 그대로인듯 하나 그렇지가 않다. 이곳에서도 억새군락이 눈에 띄게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허공의 생로병사를 알려주는 억새꽃

산부추

모두 가을이어야 만날 수 있는 것들

산정의 길을 걷는다

그곳에 담긴 가을을 만난다

가을에는 멀리 가지 마라

따라비에 올라라

고운 길을 터벅터벅 걸어라

그 산 저 아래 무덤 하나가 보인다. 헌마공신 김만일의 9대손이라는 감목관監牧官의 묘이다.

김만일 일가에 대해서는 수많은 일화가 여기저기 전해져 내려온다.
남원읍 의귀리 감목관 경주김씨 김만일의 3대조는 남원읍 수망리 지경에 초막을 지어 살고 있었다. 고려 시승 혜일선사는 풍수에도 뛰어났는데 어느날 김댁 선묘가 있는 '반드기왓'에 이르러 비가 오고 날이 어두워지기로 한 농가에 들어가 하룻밤 머물기를 청했다. 그러자 그 농부는 혜일선사를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에 혜일선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 농부 선친의 묘자리를 정해주었다. 혜일선사는 명당을 점지해주고 쇠못을 박아서 발을 떼지 못하도록 했으나 발이 간지러워 움직이자, 땅에서 피가 솟고 청비둘기 한쌍이 남원읍 의귀리와 서귀리 지장샘으로 날아갔다. 혜일선사는 묘자리가 마혈이어서 말로 부자가 될 것임을 예언했다. 그 농부가 의귀리에 내려와 살 때 아내가 친정에서 데려온 말들이 점차 번식하여 수도 없이 늘어났다. 김씨가 말을 국가에 진상하자 나라에서는 '감목관' 이라는 벼슬을 대대로 내려주었고 후손들까지 그 명예가 이어졌다.

헌마공신 김만일 일가에서는 그의 아들 김대길을 시작으로 후손이 대대로 산마감목관으로 임명됐는데, 그의 가계에서 무려 218년 동안 83명의 산마감독관이 배출되었다.

김만일의 후손인 감목관 김공의 묘

1895년(고종32) 과제가 개혁되면서 산마감목관과 명월만호·심약·검률·왜학·역학 등의 관직을 폐지할 때까지 김만일 일가의 감목관 세습이 이어졌다고 하니 그 위세는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을 따라비. 가을이어서 더욱 그리운 그곳. 이 고장 사람들은 따라비를 만나야 비로소 가을을 만났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