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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누리공원에서 관음사로 향하는 도로변에 충혼비 등과 함께 동백꽃비가 서 있다. 정확한 주소는 제주시 연동 산 132-2번지로서, 제주 오라메밀꽃 축제장 입구 맞은편 도로변이다. 우측으로부터 1957년 제주도공비완멸위원회에서 세운 충혼비, 제주4.3 당시 토벌대를 포함한 반공애국투사충혼비, 고육군대령박진경추도비 그리고 동백꽃비 등이 보인다. 제주 4.3의 아픈 영령들이 스러져간 자리마다 피어나는 동백꽃비가 왜 여기에 서 있을까.

 

 

원래 이 비석들은 사라봉 자락 충혼묘지에 있었으나 1985년 10월 26일 아흔아홉골로 제주시 충혼묘지가 이전되면서 옮겨왔고, 국립호국원 개설 이후에 다시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박진경 대령은 누구인가.

 

"조선 민족 전체를 위해서라면 제주도민 30만 명을 희생시켜도 좋다"

 

이것은 박진경이 1948년 5월 초 11연대 연대장으로 제주도에 부임하면서 내뱉은 취임사이다. 당시 중령이었던 박진경은 강경진압으로 제주도의 수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하였다. 박진경은 일본육군공병학교를 졸업하여 제주도에 주둔한 일본38군단 소속 소위로 임관하며 제주도와 인연을 맺었다. 그의 부친은 친일파 집단인 대정익찬회의 중요간부였다. 제주 4·3이 발발하자 일제시대 일본군으로 제주도에 복무한 경험으로 제주도의 지형과 산악요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박진경이 국방경비대 사령부 인사부에서 일하다가 9연대장으로 임명되어 들어온 것이다. 미군정은 그런 그에게 9연대를 확충해 편성한 11연대의 연대장을 5월 15일자로 맡겨 강력한 토벌작전을 전개하도록 했다. 그 후 11연대장으로 근무한 1달 동안 그는 전에 없는 ‘무차별 검거작전’을 벌였다. 박진경은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를 설치, 강력하고 적극적인 토벌작전을 수행하였는데, 이를 초토화진압작전이라고 한다. 그의 명령 아래 영장도 없이 수 천 명의 민간인이 체포되었는데, 미군 비밀보고서에는 그 숫자가 무려 “3000여 명이 체포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 민간인들은 대부분 12~13세 소년과 60이 넘은 늙은이와 부녀자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무고한 인민 살상 진압에 반발하여 1948년 6월 18일 새벽, 제11연대 박진경 연대장이 숙소에서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암살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미군정장관 딘 소장이 제주도에 내려왔다. 그는 조속히 범인을 검거하도록 수사를 지휘하고, 장례를 마치자 직접 박대령의 유해를 서울로 옮겨갔다. 군수사대는 두 달 후인 7월 12일, 문상길 중위와 8명의 장병을 암살범으로 지목하고 서울로 압송했다. 그후 문상길을 비롯한 4명은 8월 14일 사형언도를 받았다. 그 중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9월 23일 경기도 수색의 한 야산에서 총살됐다.

 

 

그런데 지난 2025년 11월 4일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에서는, 1948년 제주4·3항쟁 당시 민간인 학살의 단초를 연 박진경 대령에게 국가유공자 인증서를 발부했다. 박진경은 1948년 사망했으나 1950년 12월에 이승만 정권에 의해 을지무공훈장을 추서받았고 이제는 국가유공자 인증서까지 받은 것이다. 이에 2025년 12월에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에서 박진경추도비 옆에 당시의 참상을 알리는 동백꽃비를 세웠다. 안타깝다.

 

여전히 "조선 민족 전체를 위해서라면 제주도민 30만 명을 희생시켜도 좋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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