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꼴절이 스러진 자리에 홀로 계신 신홍연 스님을 다시 찾았다.

외꼴절은 1934년 11월 5일 백양사 함덕포교당으로 설치계를 받아 창건된 사찰이다. 당시 이곳에는 132~165㎡ 가량의 초가 법당과 요사채, 정자 등이 갖춰져 있었는데, 외꼴에 자리잡고 있어서 백양사 함덕포교당이라는 명칭보다는 외꼴절로 더 많이 불렸었다.

창건주지 송파당신공홍연지묘

외꼴절 창건주 신홍연 스님은 농촌 계몽 운동의 선구자로서 함덕 지역 농민들의 스승이요, 벗이었다. 스님은 이곳에서 부처님의 정법을 홍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함덕지역의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비파, 시금치, 무, 호배추 등의 농작물을 마을에 보급하고 직접 농사를 지었다. 무, 배추 등의 농사가 성공하면서 주민들의 호응도 늘어났다.

그러나 제주 4·3의 광풍은 이곳을 비껴가지 않았다.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신홍연 스님은 군경토벌대에 의해 총살당하고 외꼴절은 전소되었다. 이곳이 군경토벌대에 의해 전소된 것은 4·3 당시 조천면 일대에서 연일 자행되던 군경토벌대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마을 청년 수십 명이 피신해 온 것이 원인이었다.
당시에 군경토벌대는 스님을 귤나무에 묶어놓고 민보단원들에게 총을 쥐어주며 사살하도록 했다. 그러나 스님과 함께 농사일을 배우며 새 꿈을 키워나갔던 함덕 마을 민보단원들은 차마 그러지 못하고 먼 허공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러자 토벌대는 격분하여 이번에는 민보단원들 손에 죽창을 쥐어주니, 민보단원들은 울부짖으며 죽창으로 스님을 찔러야 했다. 이에 스님은 가부좌를 하고 그 죽창을 다 받아냈다고 한다. 스님은 그렇게 열반에 들었으나 가부좌를 한 채 몸이 굳어 염을 할 수가 없었다. 상좌인 김두전 스님의 기도 끝에야 몸이 풀려 비로소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

외꼴절이 군경토벌대에 의해 방화된 이후에 그 자리에 남아있던 여러 불기들은 원당사를 비롯한 이곳저곳으로 떠도는 운명이 되었다. 그러다가 외꼴절이 무너진 그 자리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신 해운 스님께서 1956년 함덕리 옛 지서청사를 매입하여 외꼴절의 불상을 봉안하고 덕림사로 사명을 바꾸어 옛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이곳 외꼴절터에는 당시의 주춧돌들만이 몇 기 남아있을 뿐, 주변 어디에도 간단한 안내문 하나 세워져 있지 않다.

신홍연 스님 묘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춧돌들

마른 솔잎냄새가 세월을 덮고있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목련이 다시 피는 새날이 오면 이곳에 드리워진 뜻도 선명하게 다시 되살아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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