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는 꽃을 보고 계절을 알게 되는가 봅니다.
산사의 뜰에서
안개의 향기를 맡다가
문득 산에 사는 이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산에서는
계절이 어느 꽃에서 와서 어느 꽃으로 가는지...
그 계절의 향은 어떠한지...
법정사 항일 운동의 주역 중 한 분인
방동화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법정사에서 원만사로 접어들었을 때
계절은 이미 치자꽃의 향기로 가득하였습니다.
법화사에서 탐라대학교 쪽으로 가다보면
길 오른쪽에 원만사 입구가 보입니다.
원만사는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 당시
좌대장으로 참여했던 방동화 스님에 의해 창건된 사찰입니다.
방동화 스님은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6년간 옥고를 치루고 나온 이후
금강산 마하연선원에서 수행정진하다가
다시 1929년 제주로 돌아와 이 원만사를 창건했습니다.
말이 창건이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이곳에 있는 자연굴에 숨어 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원만사의 시작입니다.
표지석이 있는 입구에서 약 1km 정도를 가면
원만사로 가는 옛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 길 바로 옆으로 시멘트 길이 조성되어
모두 그 길로만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원만사의 제 모습을 보려면
이 옛 길을 타고 오르셔야 합니다.
숲으로 들어서면
마애불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기암괴석들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바위 숲 사이로
원만사로 오르는 계단이 보입니다.
계단 양 쪽으로는 거대한 나무들이 지키고 서 있는데
나무들의 그늘이 너무 어두워서
사진으로 잡아낼 수 없었습니다.
현재의 원만사입니다.
방동화스님의 원만사는 조그만 자연굴에 의지하여 창건된 사찰이었고
그나마 제주 4.3 사건 당시 완전 전소되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찾아갔다가
오히려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러나 영실의 마지막 꼭지라고 하는
이곳의 어머니 품속처럼 온화한 풍경에
긴장은 저절로 풀리게 됩니다.
방동화 스님이 처음 의지하였던 자연굴은
사진에 보이는 후원 뒤 야트막한 동산에 숨어 있습니다.
바로 이곳입니다.
일본 경찰의 눈이 되어
한번 자연굴을 찾아보시겠습니까?
어디에 숨어 있을까요?
바로 여기입니다.
땅속으로 들어가면 한 사람이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굴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모셨던 단도 바위벽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천연요새와 같은 이 자연굴은
두 개의 굴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은 아래쪽에 있는 굴로
곡식 등을 숨겨놓았던 곳으로 이용되었답니다.
이곳을 설명해 주셨던 보살님 모습도 보이네요.
원만사의 유명한 '훔쳐온 물'입니다.
영실에서 흘러내려온 이 물은 '이맹이물'이라고도 하는데
이맹이는 '이마'를 뜻하는 제주말입니다.
이 물을 '훔쳐온 물'이라 부르는 데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방동화스님이 처음 이곳에 숨어 지내고자 할 때
물이 나지 않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흐르는 물길은
당시 물은 나지 않고 습기만 남아서 촉촉히 젖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안봉려관 스님이 앞에서 목탁을 치면서 걷고
뒤에서 방동화 스님이 경을 읽으며 이 길을 걸어 내려오니
목탁소리를 따라 물이 졸졸 따라왔답니다.
그래서 이 물을 훔쳐온 물이라 부르게 되었다는군요.
창건 이후 이 절에는 양홍기 스님이라는
어린 행자스님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양홍규 스님은
4.3 당시
이곳 원만사 계곡에서
군경에 의해 무참히 총살당합니다.
그리고 방동화 스님의 원만사도 완전히 소각되었습니다.
이후 수차례의 중건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른 원만사 대웅전 모습입니다.
이 대웅전 동쪽으로도
방동화스님이 피신을 위해 파놓은 피신굴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메워져버렸답니다.
원만사 대웅전 모습입니다.
그런데 가운데 석가모니부처님 바로 옆으로
조그만 불상이 눈에 띕니다.
이 부처님은
방동화 스님이 자연굴에 의지하여 수행할 때 모셨던 불상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원만사 스님께서 현재의 모습처럼 금을 입혀 놓으셨답니다.
원만사의 역사가 자세히 새겨져 있는 공덕비의 모습입니다.
이 뒤에 방동화스님의 자연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안개가 서서히 밀려오는군요.
풍경이 안개주의보를 내리며 댕겅댕겅 웁니다.
역사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옛 사람들은
안개가 밀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민중의 고통과 함께 하는 삶.
그날 저 안개는
그 선봉에 선 이들의 세세한 고뇌와 슬픔을
모두 감춰주었겠지만
오늘 이 안개는
그 선봉에 섰던 이들의 고귀한 뜻까지도
모두 감춰버리는 것은 아닌지 하여
안타까워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안개가 깊어도
이 길을 따라 걷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한
그들의 고귀한 뜻은
안개 속에서도 제 향을 잃지 않는
이 계절의 저 꽃처럼 오래 함께 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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