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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오백 당오백(폐사지)

외꼴절

by 산드륵 2008.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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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앉아

사람의 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가끔은

맑은 물에 비춰지는 영상이

더 고운 것처럼

사람도

드리운 그 뜻이 고와야

오래도록 곱게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농부가 되고자 했던 스님

외꼴절의 신홍연 스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대흘과 함덕의 경계에 위치했던 옛 외꼴절 자리

이 곳에 1934년

백양사 함덕 포교당

외꼴절이 들어섰습니다.

이 외꼴절의 창건주는 신홍연 스님


신홍연 스님이

이곳에 외꼴절을 창건했을 당시

함덕지역은 영농환경이 아주 열악하였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비파, 시금치, 무, 호배추 등의 농작물을

마을에 보급하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하루해를 일찍 넘겨 버리곤 하셨습니다.


지금은 값이 좋지 않아

생산지에서 폐기되기도 하지만

이 무, 배추들은

함덕 지역 경제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소중한 농작물이었습니다.

 

스님의 노력에

마을 주민들도 호응하여

외꼴절은 이 지역의 희망이 됩니다.

 

그러나

마을 청년들의 꿈을 키워가던 이곳에도 

4.3이 들이닥쳤습니다.

 

4.3 당시

조천면 일대에서 연일 자행되던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을 피해

마을 청년 수십명이

이곳으로 피신함으로 인해서

외꼴절이 토벌대의 표적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

11월 중순 토벌대의 작전이 펼쳐지며

신홍연 스님은 총살되고

외꼴절은 물론 인근 마을 대흘리도

불에 타 없어지게 됩니다.

 


토벌대는

스님을 귤나무에 묶어놓고

민보단원들에게 총을 쥐어주며 사살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스님과 함께 농사일을 배우며

새 꿈을 키워가던 함덕 마을 민보단원들은

차마 그러지 못하고

먼 허공을 향해 총을 쏘아댑니다.

그러자 토벌대는 격분하여

이번에는 민보단원들 손에 죽창을 쥐어줍니다.

죽창을 쥐어든 민보단원들은

울부짖으며

죽창으로 스님을 찌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은

훗날 유족들에 의해 세워진

스님의 비입니다.


외꼴절에서

함덕 방면으로 걸어내려오다보면 만날 수 있는

궤못입니다.

농사를 짓기에 부족함이 없는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외꼴절이 불에 타 버리고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여러 불기들은

원당사를 비롯한 이곳저곳으로 유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1956년 해운스님이

함덕리의 옛 지서를 구입 수리하여

덕림사를 창건하고

외꼴절에서 모시던 불상을 봉안하였습니다.


법당 안에 봉안된 불상입니다.


외꼴절에서 이운되어 온 아미타불 좌상입니다.

 


하얀 옷의 보살상입니다.



14년전 입적하신

이 덕림사의 창건주 해운스님의 부도탑도 보입니다.

 

거친 삶을 살았던 사람

 

그러나

흙처럼

물처럼

왔다간 사람

 

얼굴은

보지 못하여

잊혀질지나

그 뜻은

물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 마음에

오래 기억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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