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한 장이 도착했습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라 합니다.
주섬주섬 길을 떠납니다.
제주시에서 출발하여
산록도로를 탔습니다.
그리고
서귀포 자연 휴양림 입구를 지나치자마자
길 오른쪽으로
거린사슴 임업도로가 나왔습니다.
산벚꽃이 숨어 있는
이 길을
약 1.9km 정도 달리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난 시멘트 길로
100여 미터 올라갔습니다.
막다른 곳에서
길을 멈춥니다.
중문동 90번지
마음씨 좋은
중문동 아저씨의 개인 소유로 되어 있는 이곳은
한 때 버섯 재배가 이뤄지기도 했었으나
지금은 우거진 삼나무 속에 방치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도
산벚꽃만
반기는 이 없이 홀로 곱게 피었습니다.
김상헌의 남사록에 의하면
1579년에서 1601년 사이에
영실의 존자암을 대신하여
대정현 가까운 곳에
새로운 '존자암'을 만들어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라지 여지도서 등에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기록에 나타난
대정현 지경의 존자암 자리가
바로 이곳이라고 합니다.
이후 이곳은
기록에서 사라졌으나
아랫마을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1948년 4.3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조그만 암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중문동 사단마을이
4.3으로 소개될 당시
이곳 암자도 함께 없어졌는데
예로부터 절터라 불리던 이 곳은
현재 이곳 소유주의 돌아가신 조부께서
구입한 것이라 합니다.
산벚꽃은
기단석 위에 자리를 잡고
천연의 도량을 만들어 올렸습니다.
산벚나무 뒤쪽
우거진 삼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니
사진과 같은 돌무더기들이
무덤처럼 봉긋하게 쌓여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옛 사찰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곳 곶자왈의 여느 돌들과는 사뭇 달라서
눈여겨 보았습니다.
인적은 끊긴지 오래지만
산벚나무 옆
우거진 잡풀 사이에는
여전히 마르지 않는 샘물이 흘러 내리고 있습니다.
그 샘물이
도량을 빙 둘러 흘러내린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절물통이라 부르는 곳입니다.
철철
소리내어 흐르는 물은
맑고 시원하였습니다.
이 일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돌담들입니다.
사찰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무속인들에 의해
산신기도처로 쓰이기도 했다는데
그 흔적 역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길게 이어지고 무너지며
여러 형태의 돌담들이
폐사지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인근에 산재한
여러 석축들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무너지고 사라지고마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졌습니다.
그런 마음 따위는
아랑곳없이
폐사지 옆 계곡에는
새로 돋은 단풍잎이
연두빛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가는 것은 어디로 갔고
오는 것은 어디서 오는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연두빛으로 다시 오는
나선형 윤회의 고리가
어느 날은
고운 단청 입고
새 맵씨도 뽑내 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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