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읍 고내리
시니물 앞에서 바라본 고내오름.
해발 175미터의 낮은 오름이지만
고내 8경 중, 4경을 품고 있는 고내오름.
그 오름 안의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길을 떠납니다.
고내리 입구 사거리에서
하가리 쪽으로 약 300여 미터 올라가면
길 오른편으로 경작지 입구가 보입니다.
이 길에서 산쪽으로 쳐다보면
조그만 오솔길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초록빛 이끼에 덮힌 돌계단
뻐꾸기 울음소리가
길손님을 따라오는 대숲
깊은 숲으로 인도하는
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먼 옛날 수행하던 스님이 살고 계셨다는
수행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 초록 계단 위쪽이
수행굴이 자리잡고 있는 곳입니다.
수행굴 앞 너른 평지는
이제
숲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숲 속에서
고릉절이라 불리는 수행굴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 고릉절은
고내 8경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서
고릉유사(高陵遊寺)라 하여
옛 문사나 한량들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속인들의 기도처로 변하였고
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석축을 비롯하여
여러 유구들이 흩어져 있는
이 옛 터에는
초가 법당으로 시작한
암자도 머물고 있었으나
제주 4.3 사건 와중에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숲 속에 숨은 유구들입니다.
마을 어른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곳의 암자는
훗날 신도가 늘면서 기와를 올려 증축하기도 하였으나
4.3 사건으로 인해 해안으로 소개된 후
고내리 먼물 옆에
구해사라는 사찰로 창건되었고
지금은 그 스승의 맥을 이은
정혜사가 고내리 마을 안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6개씩 양쪽으로 놓여 있는
유구들도 발견됩니다.
이곳이 지금처럼 폐허로 변하기 이전에는
고내 앞바다가 훤히 내다 보여
마을 주민들이 사랑하던 곳.
아이들은 더더욱
이곳 고내오름에서 소를 치다가
산 아래 밭에서 참외를 서리하고
이 고릉절에 숨어
허기를 달래기도 하였답니다.
이 고릉절로 가는 옛 길은
이제 엉겅퀴만이 마음놓고 다니는 길이 되었습니다.
고릉절에서 하천을 따라 오고가던 옛 길
그 하천 바로 옆
애월고등학교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 일주도로변에
정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일대에는 이 정굴물 외에도
우물이 참 많습니다.
고릉절에서 사용하던 우물도 있었으나
숲에 가려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절굴물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는 정굴물
이 일대는
고려시대 초기
또다른 사찰이 존재하고 있던 곳으로도 확인되었으나
1993년 국도를 개설하면서 완전히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굴물 왼편에도 우물이 보입니다.
이제
수행굴로 가는 옛길에서는
사람보다
꽃들과 더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제주의 옛 사람들은
살아서는
오름의 저 꽃과 눈 마주치며 걷고
죽어서는
오름의 저 꽃이 되어
그렇게 살길 원했나 봅니다.
사는 게 곧 수행이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