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 장서방 집에서
장서방 내외와 여름날의 한가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용강댐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달맞이꽃을 만났다.
영화에서나 보던 시골의 한가함도 그렇지만
물가를 따라 핀 달맞이꽃의 움직이지 않는 영상이
새삼 그곳을 떠올리게 한다.
진안에서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일정을 바꾸었다.
안국사를 찾기로 한 것이다.
사전에 전혀 안국사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터라
여행의 호기심은 절정에 달했다.
전북 무안 적상면 괴목리 적성산 안국사
한참 등산을 해야겠구나 짐작했으나
해발 1024m 적성산 안국사 가는 길은 2차선 도로가 완비되어 있었다.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 안국사까지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먼저 보이는 누각을 따라 올랐다.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된 극락전
원래 이 사찰은 고려 충렬왕 3년(1277) 월인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
그런데 안국사가 위치한 이 적성산은
산세가 험하고 삼국시대부터 호남과 영남을 잇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요충지에 위치한 이 곳 적성산엔
고려시대에 이르러 거란과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적성산성이 쌓아지기도 했고
조선에 와서는 그 지리적 특성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와
왕의 족보인 신원록을 보관하는 선운각이 지어지기도 했는데
그때 이 안국사는 적성산의 또다른 사찰 호국사와 더불어 승병들의 숙소로 쓰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적성산 해발 850미터에 양수발전소가 지어지면서
안국사는 폐사된 호국사 자리로 옮겨졌으니
현재의 안국사는 호국사 터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며
오는 도중 만나게 되는 양수발전소 호수 자리가 옛 안국사 터인 셈이다.
안국사의 옛 정취는 수몰되고
남은 것들만 등에 지고 올라왔겠다.
군데 군데 옛 안국사의 파편이 보인다.
극락전 안의 부처님
다정한 전라도 사람들의 느낌이 묻어 있다.
삼성각
천불전
삼배를 드리고 나오는데
중년의 한 남자가 구석에 앉아
절을 올리고 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부디 스스로들
잘 챙겨가기를 바란다.
지장전
중생과 인연이 깊으니
어딘들 없으실까...
안국사 주차장 아래로 내려가면 적성산성
저 아래로 거란과 왜구가 몰려온다 이거지.
참 힘들게도 싸운다.
뭐 때문에...
더 잘 먹고 더 잘 살려고...
안국사에서 나와
바로 옆의 적성산 사고로 발을 돌렸다.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안내인도 있어서 끌고 다니며 친절하고도 소상하게 말씀해 주신다.
사고에는 학생들도 다수 있었는데
문화재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 같아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이곳이 바로 그 적성산 사고이다.
물론 복원해 놓은 것이지만요.
적성산 사고 옆으로는
조선왕실 족보를 보관해두던 선원각도 있다.
원래 두 곳은 담장이 둘러진 구별된 곳이었으나
현재는 마치 한 장소에 두 건물이 서 있는 것처럼 복원하여 놓았다.
참 잘하는 짓이지.
잘한다 잘한다 하면 요강을 씻어 찬장에 올려놓는다는 속담도 있다.
안내인은 이곳까지
관람객들을 이끌고 다니며 친절히 설명해 주신다.
관람중인 아이들은 꽤 열심히 듣고 있는데
역사선생님은 먼저 나가시네...
음...
관람객의 수준을 고려해서
가끔 고난이도의 문제도 출제하셔야겠다 ㅎㅎ
산에서 내려오는데
양수발전소 전망대가 보였다.
으레 올라갔다.
아래로 양수발전소의 호수가 보인다.
저곳이 옛 안국사 터다.
하부댐에서 올린 강물을 589m의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우리나라 양수발전소 중에서 가장 큰 것이라 한다.
저 곳이
지금은 단풍에 물들었겠다.
붉은 치마라는 뜻의 적성산이라 하니
지금쯤 찬 바람에 붉디붉은 그 치맛자락 훨훨 날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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