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보다 먼저 길을 나섭니다.
수식을 버린 나무의 진솔함을 따라 걷습니다.
내장산 내장사
일주문 앞에서
잠시 생각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고개 돌려 오른쪽 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옛 내장사라 불리는 벽련서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랜 인연이 있어야 찾을 수 있다는 벽련선원 가는 길
백년약수가 쉬어가라 말합니다.
바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니
나그네는 당연히 쉬어줘야 합니다.
물은 그대로 비추었을 뿐이니
나그네는 한 모금 마시고 떠나면 그만입니다.
상처가 혹이 되지 않도록
잘 살피며 걸어야 하는 건
이 세상에 왔다가는 나그네의 철칙!
이 내장산 깊은 골짜기에
처음 이 절을 지을 때
스승이 산 위에서 돌을 던지면
제자가 이 골짜기에서 받아서 하나씩 쌓았다는데
못할 것 없었던 옛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벽련선원
원래 이곳은 의자왕 20년(660) 유해스님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백련사라 불렸다고 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백련사를 내장사라고도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곳이 '古內藏寺'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그러다가 추사 김정희가 '벽련사' 라고 현판을 다시 써서 붙였다는데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없어집니다.
대웅전
불꽃에 취한 밤벌레처럼
나에 나를 더하여...
천불만불이 가능한 것은
바로 우리들의 성품이 원래 묘진여성인 까닭..
가짜는 넣어 태워버리고
진짜를 보게 하소서...
순간순간 변하는 산의 모습에
잠시 취기가 오릅니다.
벽련선원에서 내려와
내장사를 찾았습니다.
천왕문입니다.
내장사는
백제 무왕27년(636) 영은 조사가
영은사라는 사명으로 창건한 것이 시초입니다.
1923년 백학명 선사가
친일불교에 저항하는 선농운동을 실천했던 곳도 이곳입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마라'는 원칙 하에
스스로 사찰의 경제적 자립을 꿈꾸며
일을 곧 수행으로 삼아 정진하던 곳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후
1957년 야은스님에 의해 다시 복원되게 됩니다.
정혜루
정(定)은 선정이니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함이요
혜(慧)는 바른 지혜를 일으켜서 이사(理事)를 밝게 관조함이다.
관세음보살의 수행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문사수(聞思修)로부터 삼마지에 들어가라"
청정한 무분별성(無分別性)의 가르침을 들음으로 해서 얻어지는 문혜聞慧
들었던 가르침과 일체 현상을 깊이 관하되
공유(空有)에 떨어지지 않고 한결같이 회광반조하는 얻어지는 중도의 지혜, 사혜思慧
그리고 보고 듣고 깊이 사무첬던 지혜의 내용을
가지가지 경게에 팔정도와 육바라밀로 실천하는 수혜修慧
오래된 단풍이 그대로 삭정이가 되면
새 잎은 돋을 수 없을테니
자꾸자꾸 생기는 대로 마음을 비웁니다.
대웅전...
이번엔 신장님께 간곡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럴 일이 있어서..
1997년 범여스님이 조성한 진신사리탑
1932년 영국의 고고학 발굴조사단이 발굴한 사리를 모셔왔습니다.
탑돌이를 하는 어느 부부의 모습을 보며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나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러본 부도전
왜 자꾸 부도전에만 눈이 가는 걸까요.
설령 저기에 내 옛 몸이 있다하여도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건
셔터를 누르던 바로 그 놈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