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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법주사에서 별을 보고 오다

by 산드륵 2009.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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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 왔는가

 

 

내가 살아왔던

그곳을

떠날 때마다

되새겨지는 물음

 

 슬픔이 있었음을 감추지 않겠다.

 

그러나

예전에

슬펐었다는 이유로

지금

슬퍼하지도 않겠다.

 

저 파도에

다 버리고

먼 길을 떠난다.

 

 

 호서 제일 가람 법주사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신라 진흥왕 14년 의신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전나무는 어인일고.

 

천왕문 뒤로 솟은

목탑을 바라보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와 생각하니

스님께서 보신 것은

전나무도 목탑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바라보고 계셨던 걸까...

 

함께 서서

서로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다.

 

온전히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마음으로 세상을 빚는다.

아, 꿈같은 세상!

이르노니 한 바탕 유희일지라!

 

신라 혜공왕 12년 (776)에는

진표 율사가

금동미륵삼존불상을 갖춰

법상종의 3대 가람으로 성장했던 곳.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벽암선사에 의해 중창된 후

2002년에는 금동미륵대불로

옛 선인들의 뜻을 되새기고 있다.

 

금산사, 동화사와 더불어

미륵부처님을 모시는 3대 사찰 중 하나가 이곳임을

장엄하게 증명한다.

 

당간지주

 

법상종을 표방한 사찰이어서

법상종을 상징하는 깃발이

이  당간에 내걸렸었다 한다.

 

22미터에 달하는 당간지주의 위용

 

미륵부처님 오시는 날

저곳에 또다시 깃발이 날리었으면 한다.

 

 

국보 64호 법주사 석연지

위로 향한 연꽃과

아래로 향한 연꽃을 돌새김하였다.

워낙 커서 연꽃 연못이라 하지만

스님께서는 다기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고 계셨다.

신라시대부터

국가의 위호을 받던 대사찰이었던 만큼

그 위용을 이렇게 커다란 다기에도 형상화하였을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보이는 석가모니불

허리가 아주 날렵한 것이 고려 시대 불상의 특징이라 한다.

정말 날씬하다.

 

고려 초기 왕건이 불교를 통해 민심을 통합하려는 의도에서

백제, 고구려, 신라의 접경 지대에 불상을 많이 조성하여

오가는 백성들의 귀의처가 되도록 하였는데

이 불상도 그런 의도에서

이곳에 새겨진 것으로

스님은 보고 계셨다.

 

그런데 날이 너무 추워서

스님께서 얼어버린 귀를 감싸고 계시다.

 

안으로 좀더 들어가

자세히 보면

말 그림이 희미하게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의신조사가 말을 타고  가다가

말이 멈춘 곳에서 바로 이 절터를 찾아냈다는

창건설화에서 비롯된 양각화라고 한다.

 

 

대웅전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법주사를

벽암선사가 중창하였는데

이 대웅전 건축 기법은

바로 벽암선사의 작품이었다.

아름답기로 이름난 화엄사 각황전도 벽암선사가 중창하였는데

이곳이 바로 그 원형인 셈이다.

 

 법주사 석등

 

한 마리 사자는 입을 다물고 있고

한 마리 사자는 입을 벌리고 있다.

 

무슨 뜻인가!

 

나는 들어 알지만

모르면 찾아가 보게나!

 

법주사 희견보살상

신라시대의 작품이다.

 

희견보살은

성불하려는 의지로

스스로의 몸을 태워 공양한 분이다.

 

차를 머리 위로 올려 바치고 

스스로의 몸을 태우며

오직 진리의 빛으로 거듭나기를 서원하였다.

 

지금은 얼굴 부분이 마모되고 파손되었지만

그 모습 그대로

스스로를 공양한 아픔과 서원이 살아 있는 듯

오고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그리운 님께

마지막

올리는

차 한 잔 

 

방울 방울

이 몸이

다 타 흘러내리도록

그리운 님을 향한 마음

흔들리지 않는다면

기필코 성불케 하옵소서.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법주사 목탑

원래 있던 목탑에서 바깥으로 한 칸은 더 늘린 형태라 한다.

위에서 보면 만다라!

 

우리 세상도 만다라!

 

새벽 3시 40분 예불을 위해

도량에 들어섰을 때

하늘의 별들을 거느린 

미륵부처님 존상 앞에서

발걸음이 오그라들었는데

아침에 뵈니 그저 자비스럽기만 하다.

 

미륵부처님 뒤로 보이는 곳은

수정봉!

저곳의 거북 바위 전설 때문이라도

꼭 가봐야 한다고 했는데

게으른 걸음 때문에 못가보고 왔으니 다음을 기약할 밖에.

 

  

철밥솥

 

밥을 해 먹었다기보다는

이곳 사찰의 위용을 드러내는 소도구였을지 모른다는

스님의 생각.

 

법주사 밥은

참 맛있었는데

저 철밥솥으로

한 번 대중공양하고 싶다.

 

조선 인조 2년 (1624)

이곳을 중창한 벽암대사비.

법주사에 들어설 때는 못보고

나오면서야 보게 된다.

 

내가 못 봐도

꽃이고

내가 봐도

꽃인 것!

 

그게 무엇일까?

 

나를 쿡 찔러 알게 해 준다면

밥을 살까...

떡을 살까...

 

  

잠을 잔다.

 

몸이 많이 아프다.

 

귀향의 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속리에서

속세로....

 

그래서 몸이 아픈겐가.

 

  

 

 

Limelight, 1952) OST Theme from Lime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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