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둔 풍경 하나.
이제는
그걸 풀어내버릴 때가 되었다.
아침 안개 속에서
지울 것은 지우고
버릴 것은 버리고 남은 자리
둔지오름
오늘 그 앞에 섰다.
구좌읍 한동리의 둔지오름
'둔지'라 불리는 이 오름 일대는
이곳을 기억하는 인접한 지역 사람들에게
평소에는 무시하고 사는
애틋함, 서러움, 춥고 시림, 멀고 먼, 그리움 등등의
뭐 그런 감정으로 읽혔었다.
그 둔지로 향하는 길.
표지석 뒷편으로 난 길을 피해
남서쪽 능선을 택했다.
길 앞에서 숨이 탁 막히는 이 감정은
참 오랫만에 느껴보는 것이다.
말굽형 굼부리 안쪽 품에 안긴 수많은 알오름
시간을 등지고 앉은 저들의 마을엔
바람조차 없으니
살아서 이 땅을 밟은 자 역시 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풍경을 바라보며
옛 선사가 남긴 법성게에 귀를 기울이다가
내 생의 시간을 놓쳐도 그저 그만일 뿐.
法性圓融無二相 (법성원융무이상)
법의 성품은 둥글고 오묘하여 두 모습이 없으며
諸法不動本來寂 (제법부동본래적)
모든 법은 본래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으니
無名無相絶一切 (무명무상절일체)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고 일체가 다 끊어져
證智所知非餘境 (증지소지비여경)
알아야 할 대상은 증지이지 그 외의 경계가 아니네
眞性甚深極微妙 (진성심심극미묘)
지극히 미묘하여 깊고 깊은 진성이여
不守自性隨緣成 (불수자성수연성)
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따라 이루네
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
하나 속에 모두 있고 모두 속에 하나 있어
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하나 곧 모두이고 모두 곧 하나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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