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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도너리 오름

by 산드륵 2010.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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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서 노닐던 노루와 눈이 마주쳤다

 

도너리 오름 기슭에 널려있는 산탈

 

마음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그 맛은

지나간 어린 날들의 영상처럼 시고 혹은 달지만

두어 방울로 맛만 보고 돌아선다.

사람의 먹이는 지천에 깔렸는데 이것마저 탐한다면 노루에게 부끄럽다.

  

 

안덕면 동광리 지경의 도너리 오름은

남서 방향의 말굽형 굼부리와 북쪽 산상의 원추형 굼부리

두 개의 굼부리를 가진 오름이다.

 

남서 방향의 이 굼부리는

그 모양이 골체와 비슷하다 하여

골체오름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오름 기슭에 자라는  

쥐똥나무, 찔레, 산딸기, 청미래덩굴 등은

나비가 앉기에 좋다

 

작은 바람과 작은 꽃과 작은 날개가

오름 기슭을 감싼다. 

 

 

그러나 말굽형 분화구 안쪽으로 갈수록 숲은 더더욱 우거지고 새소리는 꿈인듯 멀고 멀다.

 

  

말굽형 분화구 쪽에서 이어지는 알오름들

 

깊이 파인 둔덕을 경계로 하여

다시 이어지고 이어진다.

 

분화구를 따라 정상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제주서부 곶자왈의 모태가 되는

이 도너리 오름의 시야가 서서히 트여 온다.

  

한수기곶, 제주 최대의 곶자왈

 

도너리 오름 분화구에서부터 해안마을까지 이어지는 곶자왈의 장관이 펼쳐진다.

 

구름으로 짠 천이 나푼나푼 허공을 맴돈다  

하늘옷이 있다면 이럴지도 모르겠다.

가볍고 서늘하게 온몸을 감싸오지만 두 손으로 잡을 수 없다.

  

비양도가 가깝다

  

정물오름과 당오름은 더욱 가깝다  

 

당오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은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제주를 그들의 최후의 보루로 삼고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제주 사람들과 함께 해 온 오름들이 그들의 저항 기지로 도륙당했다.

그중 원물오름과 당오름은 일본군 제111사단 사령부 주둔지였고

당오름과 마주한 이 도너리오름에도

제111사단 예하 독립 산포병 제 20연대 2천 9백여명과 박격포 제 29대대 1천 4백여명이 주둔했다.

 

오름 능선의 일본군 진지동굴

 

도너리 오름 북쪽 방향에서 파고 들어온

도너리의 진지동굴은

남쪽 오름 능선을 관통하고 있다.

  

약 5미터의 간격을 두고 파여진 진지동굴의 입구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잡목이 우거져 있으나

위장된 듯한 그 모습을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7월의 마가 흐르는 골체오름을 벗어나니

이번에는 원추형의 깊은 굼부리가 시원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도리암메

 

도너리 오름이 가진 두개의 굼부리 중에서

북쪽 방향 산상의 굼부리를 도리암메라 한다.  

도리암메는 '둥근 굼부리'라는 뜻

 

도리암메에서 보이는 금악봉

 

금악봉과 도리암메 사이 곶자왈에는 

골프장이 들어서 새로운 지형을 만들었다.  

 

도리암메의 나비

 

산에서 태어난 나비

 

날개를 펴고 접고

 

무심히 제 할 일만 한다

 

내려다본 굼부리 안에는 돌탑이 쌓여있다.

전쟁론자들의 마성을 봉인할 돌탑이길 바란다.

 

굼부리의 기슭에 걸터 앉아 다가오는 구름을 맞이한다. 

  

같은 시각, 굼부리를 내려보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등뒤로는 새들이 바람에 휘청이며 먼지처럼 쓸려가는데

우공은 꿈쩍 않고 굼부리를 지키고 있다.

 

우공 중 한 놈이 먼저 길을 낸다.

따라오라 이거다.

 

멀리 가지 말라는 듯 어미소가 느릿느릿하게 부른다.

걱정이 깃들지 않은 편한 울음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다가

그들 우공처럼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내일은 도축장으로 가는 트럭이 달달 소리를 내며 이곳의 적막을 깨트리겠지만

오늘, 그들은 미리 근심을 재어두지 않는다.

   

오늘, 꽃이 있어 좋을 뿐

 

삶은 원래 백척간두지만

오늘, 산이 있어 좋을 뿐....

 

'도'가 넓어 도너리 오름

혹은 멧돼지가 내려온다 하여 '돗내린 오름'이라 한다는데

이제는 넓은 '도'로 내려올 '돗'도 없으니

그저 무심히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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