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31 오후
전남 무안과 목포의 경계
무안의 연꽃과 목포의 바닷바람이 머리 속에서 뒤엉킨다.
전남 무안 승달산의 법천사 목우암으로 가는 길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2기의 석장승이
이곳부터 법천사 경내임을 말해준다.
법천사는 내려오는 길에 참배하기로 하고
우선 목우암까지 올랐다.
신라 성덕왕 24년 725년 금지국의 정명 스님이 창건한 목우암
고려 인종과 의종 1131년에서 1162까지 중수를 거듭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중국 임천사 원명스님이 제자 5백명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수행했는데
그 제자 5백명이 모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목우암이 있는 이곳을 승달산이라 이름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임(保任)이라는 말은 목우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참선을 해서 어느 정도 해오(解悟)는 했지만 숨이 다 떨어지진 않았으니 보임하려는 거지.
밥을 하려면 뜸을 들여야 하거든.
여기서 보임하고 간 분들이 좀 있지.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목우자(牧牛子)라는 호를 지어 갔잖아요.
보임수행은 뜸을 들인다는 수행이에요.
이곳 목우암에 계신 금산 노스님의 말씀이다.
노스님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셨고
땡볕 아래에서는 제자 스님의 독경 소리만 높다.
목우암의 목조 삼존불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원래 이 삼존불은
법천사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법천사가 1856년 폐허가 되어 목우암만 남게 되자
이곳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라 한다.
노령산맥 4대 명당 중 하나라는 이곳 승달산의 기운이
목우암에서 편안하다.
목우암의 축성각
하나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두 개의 방이 있다.
석가모니부처님과 나한상을 모신 나한전, 그리고 옆 방에는 산신당으로 구성된 독특한 양식으로 되어 있다.
법천사의 부처님을 목우암으로 옮겨오게 되자
본래의 부처님을 축성각으로 모시고 내부를 변경하면서 이뤄진 독특한 양식으로 보고 있다.
목우암의 부도
보임 중일까, 성불하셨을까
목우암에서 내려와
오는 길에 스쳤던 법천사로 향한다.
백제 성왕 30년 덕이조사께서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법천사
법천사가 자리한 이곳은 원래 영축산으로 불리었으나
중국 원나라 임천사의 원명조사의 제자 5백여 수도승이 수행하여 도를 이른 후
승달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호남의 대가람으로
한때 고승대덕을 배출하며 4대 성지로 불리던 이곳은
조선 현종 이후 화재로 인해 폐허가 되었다가 최근에 들어 다시 재건되고 있다.
대웅전의 부처님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살피시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
부리부리한 눈망울의 신장님
그리고 대웅전 앞뜰에는
삼층석탑과 석등 그리고 종각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서 있다.
무더위를 화두로 삼은 2010년 7월은 또 이렇게 지나갔다.
세월만큼 무거운 몸을 안고 7월은 또 이렇게 지나갔다.
산들바람을 기다리며
이제 하산을 준비할 때가 되어간다.
'불가사의佛家思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흥사 일지암 (0) | 2010.08.19 |
---|---|
두륜산 대흥사 북미륵암 (0) | 2010.08.15 |
완주 송광사 (0) | 2010.08.11 |
임실 성수산 상이암 (0) | 2010.08.10 |
금원산 가섭암터 그리고 문바위 (0) | 2010.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