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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천장암

by 산드륵 2011.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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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30일 아침

 

마침내 다달았다.

충남 서산군 고북면 장요리

버스조차 아득히 한적한 시골길

이 길을 경허와 그의 세 달, 수월 혜월 만공이 걸었단 말이지.

천장암의 수행자들에게

제비들이 먹을 것을 날라다 준다는 연암산이 가까워질수록

내 앞을 가로막던 유리벽 하나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천장암 입구

 

왼편으로는

경허 선사의 사자후만큼이나 시원한 폭포에 마음을 씻으며 천장암으로 오를 수 있고

오른편으로는

구비구비 돌고도는 업장을 씻고 맑은 머리통으로 천장암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연암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에 눈을 씻고 굽이진 경사길을 오른다.

 

가까이 다가와 떠나지 않는 두꺼비

한참을 지켜봐 주다가 다시 가파른  길을 탄다.

 

벗을 떨치고 들어선 곳

안개 자욱한 천장암

 

하늘이 감춘 곳이 아니라

마음이 하늘을 품고 머금어 화엄의 하늘이 된 천장암이다. 

 

백제 무왕 34년(633) 담화 선사가 창건한 이래로

수많은 수행자들이 이곳을 거쳤다.

 

그중에서도 근대사의 암울한 이 땅을 밝혀준

경허선사와 경허의 세 달, 수월, 혜월, 만공 선사가 이곳을 거쳤다.

그들의 향훈만으로도 이곳에선 모두가 너나없이 경허의 달이 된다. 

천장암은 인법당인 관계로

부처님과 수행자의 거처가 따로 없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천장암에서 기도 수행 중인 수행자에게

경허스님의 말씀처럼 이곳은 염궁문

 

천장사 7층 석탑

시대와 상관없이

저 석탑에 비추인 달빛을

경허도 보고 수월도 보았다면 나 또한 볼 수 있는 것

 

경허 큰스님께서 견성하신 후 보림하시던 원구문

문을 열고 들어가니 경허 큰스님께서 내려다보신다.

큰 사람이 머물던 조그만 방안

온몸이 서늘하게 젖어온다.

 

원구문 옆 공양간은 수월 큰스님께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지송하다가 삼매에 들었던 곳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가마솥에 대중들 공양거리를 마련하다가

몸이 벌겋게 익는 것도 모르고 삼매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 재주를 인정받아 일찍 법좌에 올랐던 경허스님은 명성을 드날리던 어느날 은사 스님을 찾아 길을 떠났다.

산길을 돌고 돌아 겨우 만난 마을에서 목이나 축이고 가려던 경허 스님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대문을 열어보면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데 마을에는 소리쳐도 아무도 나와보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집이 문이 열리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어서 도망가라고. 돌림병이 돌고 있다고.

경허선사는 등줄기가 오싹한 그 말에 한걸음에 내달아 도망쳤다.

달리다가 달리다가

산마루에 멈춰선 경허는 깨달았다. 마음과 만났다.

 

경허선사는 이 천장암에서 지낼 때 늙으신 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평소 기도를 놓지 않으시고 수행자처럼 지내던 그 어머니가 어느날부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경허의 눈에 들어왔다.

경허가 까닭을 물으니 어머니가 답했다.

"내 아들들이 모두 법력이 높은 스님인데 내가 왜 수행하느냐, 가만 있어도 절로 될 것인즉."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경허와 그 어머니는 늘 겸상을 했었는데 그날은 밥 두 사발에 수저가 하나였다.

어머니가 까닭을 물으니 경허가 답했다.

"내가 먹으면 어머니도 배가 부르지 않겠는가."

 

경허 스님의 맏상좌 수월스님은 늘 말이 없었다.

늘 짚신을 삼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짚신을 삼아 봇짐에 넣어주었다.

고단한 길에 많이는 아프지 말라고.

수월 선사는 간도로 떠났다.

나라 잃은 백성들이 아픈 발로 간도로 떠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조선의 백성들이 간도로 들어오는 입구의 고갯마루에서 수월은 살았다.

그곳에서 짚신을 삼았다.

두려움에 떨며 간도로 들어오는 조선 백성들에게 따뜻한 물과 밥 한 술을 먹였다.

그리고 짚신을 넣어주었다.

수월은 그렇게 살았다.

수월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그렇게 갔다.

화엄사 개울가에서 몸을 씻은 후 

머리에 곱게 갠 바지와 저고리 그리고 짚신을 올려놓은 채

가부좌를 틀고 그렇게 갔다.

평생 나무 하고 짚신 삼다가 그렇게 갔을 뿐인데

수월의 향훈은 왜 이리 깊은가.

 

사자봉에 올랐다.

옛 선사들의 사자후가 바람이 되어 밀려온다.

 

그리움에 목이 메인다.

 

 

천장암의 맑은 스님들이

아이처럼 마냥 웃는 까닭은

그저 도반과 함께이기 때문에.

 

그들도 역시 경허의 달들이다.

 

머물렀어야 했는데 머물지 못하고

갈림길에 섰다.

 

수행하다 죽어라

 

그리고 달 뜨면 다시 만나자.

 

그렇다.

세상을 살면서

약속은......

이것 하나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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