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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경주 오봉산 주사암

by 산드륵 2013.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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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21

 

 

경주 오봉산 주사암

 

산들바람 따라 들어온 길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주암사라는 사명으로 창건하고

이후에 주사암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곳.

 

이곳이 주사암으로 불리게 된 데는

재미있는 설화가 함께한다.

 

서라벌의 반월성에서 한 궁녀가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서쪽하늘을 날아 산꼭대기 동굴로 들어가니 노승이 있는데

밤새 그곳에 있다가 다시 새벽이 되면 돌아오는 꿈이었다.

왕이 그 말을 듣고 대노하여 궁녀에게 이르길

주사를 몸에 지녔다가 그 동굴 속에 뿌려두고 오너라고 했다.

궁녀는 왕의 말대로 주사병을 던져 동굴을 붉게 물들였고

왕은 다음날 오봉산을 뒤져 꿈에 나온 그곳을 찾아냈다.

붉게 물든 동굴 안에서 한 노승을 발견하고 왕이 그를 체포하려 하는 순간

노승의 주문에 수만의 신병들이 나타나 위호하였다.

왕은 노승의 비범함을 알고 궁궐로 모셔와 국사로 섬겼다는 그런 이야기

 

그러거나 말거나

참선삼매에 든 스님은

미동조차 없다.

 

이곳에서는

여태까지 죽어나간 사람이 없다하여

불사처不死處로도 불리는 등

밀교와 관련이 있었던 사찰이 아닌가 추정해 보게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스님은 가부좌를 풀지 않았다.

 

 

 

주사암의 큰법당

 

관세음보살을 봉안하였는데

석가모니불을 조성하기 위한 불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눈매고운 석가모니불이 들어오시면

한번더 찾아가 뵐 지도 모르겠다.

 

오봉산 주사암은

신라 문무왕 3년 663년에 쌓기 시작하여 3년만에 완공한 부산성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의상대사가 이 절을 성안에 두게 되면

신라가 망하지 않으리라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간파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성을 축조하기 전

선덕여왕이 산아래 여근곡에서 큰 전투를 치뤘던 만큼

이곳의 입지는 매우 중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님의 참선삼매는 깊기만 하다.

 

다른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있는지

바람의 향기가 다르다.

 

건너편 산꼭대기의 흔적은

고랭지농업을 위한 개간지.

 

마당바위

 

아찔한 절벽 아래에

모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서 보리를 쌓아놓고 술을 빗어 군사들에게 먹였다고 하여 지맥석이라고도 불리고

움푹 패인 곳은 말발굽자국이라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저 건너에서 불어오는 청풍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바람을 따라 바위끝을 날아오르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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