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2. 남산을 걷다
경주 남산을 걷기로 했다.
용장사지로 올라 금오봉을 거쳐 삼릉으로 내려온다.
새벽에 출발해서 오후에 내려오기로 계획을 잡았다.
용장골의 설잠교
신라시대 용장사가 있었다 하여 계곡은 용장골이라 불리는데
그 용장사에 머물며 '유금오록'에 155수의 시를 남기고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 등을 저술한
매월당 김시습의 법호를 따서
이 다리의 이름은 설잠교이다.
남북 8km 동서 4km 표고 495m의 경주 남산
이 야트막한 산에 깃든 천년의 향기
천년의 향기를 따라
수직 바위를 기어올라간다.
나무가 반, 유물이 반이라는 경주 남산
서라벌의 옛 왕궁 월성의 남쪽에 자리하여
이름도 남산인데
남산에서는 구르는 돌 하나도 문화재급이라 하니
발걸음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험한 계곡을 올라 처음으로 마주친
용장사지의 미륵장육상.
부처의 상호가 없다.
둥글게 깎은 대좌 위
아미타의 상호가 없다.
1932년 일본인들이 복원해 놓았다고 하는데
상호는 찾을 수 없었나보다.
뭐라고 형언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아득하다.
자연암벽에는 마애여래좌상
이곳에 서 있던 옛사람처럼
고두례하듯 이마를 바위에 대고 그 숨결을 듣는다.
여래좌상의 왼쪽 어깨에
'태평 2년 8월'의 기록이 희미하게 남아있다고 하나
육안으로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비바람에 마멸되고마는 것은 우리네 인생살이 역시 다르지 않으므로
스러져가는 것에 대해 시선이 붙들리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용장사곡 삼층석탑
산은 저 아래에 물러서 있고
하늘은 가깝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자연암반을 다듬어 아랫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기둥새김이 있는 윗기단을 배치하여
산 전체를 기단으로 여기도록 설치되었다고 한다.
자연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으려고 했던 옛사람들의 그마음은 어디서 온건지 궁금해진다.
밤에는 별이 총총
낮에는 탑이 총총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시원한 바람이
계곡을 타고 올라와 발길을 붙들어 준 덕분에
자연암반 위에 탑처럼 오래 머물렀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에서
금오봉을 향해 올라가다가
밑을 내려다보니
용장사지 미륵장육존상이 내려다보인다.
미륵의 얼굴을 찾아나서듯
내 얼굴도 찾아봐야겠다.
용장사터를 거쳐 금오봉에 가까이왔다.
이곳에서부터 등산로라고는 믿기지 않는 신작로가 나타난다.
큰길을 조금 걸어 정상을 찍고
상선암 쪽으로 하산한다.
삼릉으로 내려가는 길은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잠시 쉬었다 가려고 산책로에서 벗어나
냉골이라 불리는 삼릉계곡의 바람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런데 저 아래로 마애불이 보인다.
어디로 들어가도 온통 마애불이다.
바둑바위 남쪽 중턱의 마애불.
낙석 때문에 가까이 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상호가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연화대에 결과부좌한 모습
삼릉계곡에서는 가장 큰 마애불인데
남산의 금오봉을 향해 앉아있다.
상선암도 가깝다.
등반로를 따라 내려오니
이곳은 상사바위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이
이 바위에 빌면 병이 낫는다고 전해진다.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기도하던
산아당도 보인다.
준비한 물이 다 떨어져갈 무렵 나타난 상선암
이곳에도 물이 귀하니 딱 한모금만 축인다.
상선암 바로 앞의 선각보살입상
언제 쓰러졌는지 알 수 없으나
상체와 발 부분이 없는데
현재 남아있는 부분만으로도
5-6m에 달하는 커다란 보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현재 남아있는 부분에서
흘러내린 옷자락과 영락 장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상선암에서 내려와
삼릉계곡의 석불좌상을 찾았다.
당당한 상체
연화대 위에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불좌상
그러나 발견당시 광배와 상호의 훼손이 심하여
보수를 한 상태이다.
남산의 가을남자라고도 불린다는데
고독하면서도 당당하다는 뜻일까.
알 수 없다.
다시 내려오니
삼릉계곡 선각 육존불
두개의 바위에 각각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남산의 다른 불상들과 달리
오직 선으로만 그려져 있다.
앞쪽 바위에는
본존불이 가운데 서 있고
그 양옆으로 보살이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우러러보고 있다.
꽃을 든 보살
이 삼릉계 선각불은
오직 선으로만 그려낸 마애불이기에
희귀성에서 독보적인 존재라고한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손과 머리가 파손된 채 발견되었다.
남산 삼릉계곡에만
11개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현재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대부분 훼손이 심하다.
스스로의 얼굴은 온전한지 언제나 되돌아볼 일인데
삼릉계곡이 끝나갈 무렵
다행히도 고운 얼굴의 관세음을 만났다.
한손에는 정병을 들고
한손은 다가오는 그대의 손을 맞잡으려 앞으로 내밀고 있다.
천년전
곱게 단장한 붉은 입술도 여전하다.
드디어 배리 삼릉으로 나왔다.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어
삼릉이라 불리는 곳이다.
천년 세월 너머로
깊숙히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니
마치 오래도록 꿈을 꾸다가 일어난 것 같다.
달빛 따라 걷는 남산기행이 유행이라는데
이 길에 달빛이 드리운 것을 상상만해도
가히 황홀할 뿐이다.
'불가사의佛家思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산 반룡사 (0) | 2013.08.02 |
---|---|
경주 백률사와 굴불사지 석불상 (0) | 2013.07.31 |
경주 무량사 (0) | 2013.07.27 |
경주 칠불암 (0) | 2013.07.27 |
경주 오봉산 주사암 (0) | 2013.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