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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와 3

섯알오름 학살터와 고사포 진지

by 산드륵 2014.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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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울이 알오름에서 섯알오름으로 이어진 길

 

 

 

바람에 이리저리

찔레 향기 날아오르는 길

 

 

 

듬성듬성 꽃향기

 

 

 

 

풍경 고운 이곳에

그러나 숨어있는 화약냄새

 

 

 

 

일제 고사포 진지

 

 

 

 

이 고사포 진지는

일제가 태평양 전쟁 당시 제주를 군사 기지화 하면서

인근의 알뜨르 비행장을 수호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 시설이다.

모두 5기의 진지가 있는데

4기는 완성되고 1기는 미완성 형태로 남아있다.

 

 

 

 

직경 10m 깊이 1.5m 크기로

둥그런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이곳에서도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일제에 징용되어 노역을 해야했다.

 

 

 

 

풍경은 곱다.

노래는 슬프다.

 

 

 

 

돌아보니 모슬봉의 미군 군사 기지는 여기서도 선명하다.

 

 

 

 

콘트리트 사이에서 피어난 들꽃.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안타까운 영령들 때문에

들꽃만 바라봐도 눈물이 나는데

더구나 안산의 한 연립주택 단지에는

단원고 학생 희생자만도 150여명이란다.

아, 그 고통이 감당되지 않는다.

 

 

 

 

동시대인이라는 업장으로 인해

당할 때 당하더라도 울 때는 울고 살자.

평생을  제 가족 하나 건사하려고 몸 사리다가

분노조차 못해보고 끝나는 인생들아 . 

 

 

 

 

살릴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에게

살려달라 하는데 

제스처뿐이다.

지혜가 없으니 자비도 없다.

 

 

 

 

 

 

어두운 동굴이다.

 

 

 

 

고사포 진지 아래로 형성된 동굴진지

 

 

 

 

보호관리 출입제한

 

 

 

 

전쟁

 

 

 

 

학살

 

 

 

 

탐욕

 

 

 

 

그 끝은 어디

 

 

 

 

눈이 시리다.

 

 

 

 

바람은 거칠다.

 

 

 

 

다시 그 곁으로 어두운 흔적이 있어

걸음을 옮긴다.

 

 

 

 

제주도내 진지동굴 중에서

동공의 크기가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되는

섯알오름 진지동굴.

전투사령실, 병사, 탄약고, 연료고, 비행기 수리 공장, 어뢰 조정고, 통신실 등의 군사시설을 감추기 위한 용도로 구축되었다고 한다.

 

 

 

 

그 길을 따라

섯알오름 학살터에 이르렀다.

 

 

 

 

알뜨르 비행장의 격납고

 

 

 

 

그리고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로 향하는 길

 

 

 

 

이나마 단장된 것도

참 다행이라 여길 수밖에 없는 현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우리 민족을 압살하던

예비검속법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법은 해방과 함께 폐지되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이 법을 악용하여 한림과 대정지역의 민간인들을 학살하기에 이르른다.

 

 

 

 

한국전쟁 당시

모슬포 주둔 정부군이

한림지역 60여명 모슬포 지역 130여명의 주민들을

집단학살하고 암매장한 곳.

 

 

 

 

원래 이곳은

일제의 탄약고로 쓰이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1950년 8월 20일 음력 칠월 칠석

한림어업조합 창고와 무릉지서에 예비검속되었던

한림지역 주민들이 처형되었다.

이들의 유골은 56년 유족들에 의해 수습되어  만벵디 공동 장지로 옮겨졌다.

 

 

 

 

한 사람이 한 명씩 총살하라는

중대장의 명령이 있었다.

GMC 트럭에서 내리는 민간인을

이곳 호의 가장자리로 끌고와서 한명씩 세워놓고

지휘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해 시신을 호 안으로 떨어지게 한 장소다.

이곳에서 희생된 모슬포 주민들은

백조일손으로 모셔졌다.

 

 

 

 

학살터의 맞은 편 언덕으로 올라가면

다시 일제의 고사포 진지가 보인다.

 

 

 

 

두 개의 고사포 진지가 인접해 있다.

잊혀진 전쟁이다.

다 지난 일이다.

물론 그렇다.

그러기에 방관이 키운 권력이 더 거센 바람이 되어 다가와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먹고살기가 고단할지라도

가끔은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들고 있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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