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4.3이다.
영화 '지슬'의 영향인가.
큰넓궤로 가는 새로운 길이 생겼다.
그 덕에
가시덤불에 찢기며 곶자왈을 헤매지 않아도
접근이 가능하다.
안덕면 동광리 산 90번지 곶자왈의 큰넓궤
1948년 11월 중순
이승만의 국군 토벌대에 의해
중산간 마을들이 화염에 휩쓸려 잿더미로 변해갈 당시
야산에 흩어져 목숨을 숨겼던
동광리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은신하던 곳
겅해도 살아보잰
도망온 이들을 따숩게
그렇게 안아 주었던 큰넓궤
옛 제주 사람들에게 궤는
생존의 마지막 끈이 다할 때면
저절로 발길이 옮겨지는
그런 곳이었나 보다.
몸을 가린 것은 갈중이 하나뿐이어서
오돌오돌 떠는 손녀를 달리 어쩔 수 없었는데
덤불에 찢기며 들판을 떠돌때
한라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마을사람 120명
토벌대들이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숨죽이던 곳
좁고 어두운 저곳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망설이다가 바닥에 바짝 엎드려 기어들어갔다.
손바닥이 까지고 카메라가 여기저기 부딪힌다.
촛불을 켰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카메라가 담은 풍경이다.
마을을 방화하고 총을 난사하는 국군 토벌대를 피해
야산을 떠돌다가
마을 노인과 어린아이들이
이곳에 기어들어와 40여일을 숨어지냈다.
청년들은 궤밖에서 망을 보며
인근의 삼밭구석에서 물도 길어오고
근처의 작은 궤에서 밥도 해와서
사람들을 먹였다.
그러나 국군토벌대가 이곳을 찾아냈다.
그런데
총을 난사하는 군인들에게 저항하는 방법이
이불솜에 불을 붙여 연기를 내뿜는 것이었다니...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좁은 궤안으로 접근하지 못한 토벌대가 잠시 물러나자
사람들은 한라산을 향해 내달렸다.
그저 한라산만 바라보며 내달렸다.
그러나 그들은
영실 인근 볼레오름 근처에서 다시 토벌대에게 붙들려 총살되었고
생포된 이들은 정방폭포 인근으로 끌려가
다른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학살되었다.
'4 와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섯알오름 학살터와 고사포 진지 (0) | 2014.05.11 |
---|---|
삼밭구석 (0) | 2014.03.24 |
성산포 터진목 (0) | 2013.03.31 |
노근리 평화공원 (0) | 2012.08.06 |
제주 4.3 평화공원 (0) | 2011.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