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13:10분에 출발하여
16:00에 이곳 장춘공항에 도착했다.
가을 공항
쌀쌀한 날씨가
'떠남'을 실감하게 한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조금은 쓸쓸한 일이다.
그 쓸쓸함의 매력 때문에
늘 떠남을 상상하며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백두산 천지연으로 가는 첫걸음을
이곳 장춘공항에서 출발한다.
장춘에서 통하로 가는 길.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백두산에는 9월 6일 첫눈이 왔다고 한다.
이 가을비가 백두에서는 눈이 되어 내리고 있을 것이다.
만주벌판
일제를 피해
혹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약속한 바도 없었지만
너나 없이 다시 찾아 모여든 옛 땅, 만주.
이곳 만주에 1923년 참의부, 1925년 정의부와 신민부 등이 결성되어
각각 휘하에 한인 교포들을 거느렸다.
3권이 분리된 통치 기구와 군사 조직을 갖춘 사실상의 조선정부이다.
이 만주의 실질적인 정부, '삼부'는
정의부에 약 700명의 군사가 있었고
신민부는 약 500여명의 군사 외에
김좌진이 이끄는 군사위원회가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간부양성에 나섰다.
청산리대첩, 봉오동전투 등
무장투쟁 이후
일제는 1920년 10월초부터 약 2만명의 대부대를 투입해
독립운동의 기반이 되는 한인촌을 불사르고 무고한 한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는
경신참변을 일으켰다.
피의 만주.
오후 3시 40분경 장춘에서 출발하여
오후 8시 통하에 도착할 때까지
옥수수밭은 지치지도 않고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만주벌판의 허허로운 바람도 쉬지 않고 나를 쫓아왔다.
4월에서 10월까지만
사람이 직접 손으로 재배하는 옥수수 농사가 가능하고
그 이후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만주 벌판.
그런 가운데서도 군데군데 벼농사를 짓는 곳이 있다.
그 이유는
여전히 밥을 먹어야 하는 조선족들 때문에.
'밥' 때문에.
조선족들은 밥을 먹어야 해서
저 옥수수밭 어딘가에
벼를 심고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이다.
만주벌판의 홍범도와 김좌진을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 했던 이름없는 이들을 생각한다.
이육사의 광야를 생각한다.
이육사가 노래한 만주의 이 땅에
이제는 핏물든 옥수수의 붉은 줄기만 광야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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